수라갯벌, 고려청자 발견의 의미와 새만금

군산시민연대
2022-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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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라갯벌, 고려청자 발견의 의미와 새만금


얼마 전 여러시민들과 함께 생태/문화조사(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해동 주관)를 진행하며 수라갯벌을 한 달에 두 번 걷기를 진행했다. 사람들과 걷는 탐방중 2년전 수로공사를 위해 갯벌을 파놓은 모래더미를 지나중 뭔가 심상치 않은 여러 조각의 청자들이 좁은 장소에 깨져 있는 것들을 볼 수 있었다. 바로 녹청자 그릇들이었다. 그리고 2주 후 같은 장소에서 고려청자(고려상감청자국화문 주발)가 발견되었다. 문화재는 이렇게 우연히 발견되는 모양이다.

 



[수라갯벌에서 발견된 고려상감청자국화문 잔와 추가로 수습된 청자]

 

 고려말~조선초에 만들어진 녹청자와 고려청자는들은 새만금 지역이 당시 조운선들의 이동로였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당시 문화층(당시 문화를 알 수 있는 물건들 및 흔적을 가지고 있는 층)이 실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보존 운동을 하는 입장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발견된 장소는 새만금 신공항 예정부지 북쪽으로 임시 수로를 내기 위해 포크레인으로 갯벌을 2m 가량의 깊이로 수로를 파며 주변에 퍼 놓은 모래더미에서 발견되었다. 문제는 완전한 형태로 있던 유물이 포크레인 작업으로 대부분 깨진 것이다. 700~800여년전 수장되어 갯벌에 묻혀 있던 모습과 달리 깨진 단면은 선명한 청자의 속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다수의 청자들이 동일한 장소에서 발견된 점을 미루어 볼 때 과거 침몰선의 물건일 수 있다는 의견이 높아지고 있다.

 

왜 여기서 발견되고 있는 것일까.

 

 첫째, 새만금 유역은 과거 40여년 전만 하더라도 금강과 만경강, 동진강이 하나의 커다란 강하구를 공유하였고, 강하구는 다양한 해양생물을 키웠고, 어패류의 생산지로, 육지의 중요한 출입로로 육지와 바다를 이어주는 곳이었다.

 

 둘째, 부안지방과 신안, 강진등에서 생산된 도자기등 많은 물품을 싣고 조운선들이 오르내리던 해상루트라는 점이다. 새만금 방조제 건설 당시 주변 해역 난파선에서 대량의 고려청자 유물이 쏟아져 나온 것은 이를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과 같은 GPS 기술이 없던 과거엔 조운선들은 항해할 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파도가 거센 먼바다를 항해하는 것이 아니라 해안에서 멀지 않은 상태로 항해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새만금 주변은 1980년대부터 군산 외항공단 조성을 위해 바다쪽으로 10여km의 해안 매립을 진행했고, 그로 인해 물길이 바뀌며 이곳 해저 유물들은 뻘이 쌓여 묻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더욱이 100년전 일본인의 대규모 간척사업 전에는 누구나 잘아는 내초도가 섬으로, 지금의 지형으로 해석하면 안되는 것이다.

  그동안 새만금 유역에서 과거 조운선의 이동이 잦았는데도 단지 그 면적이 크다는 이유로 해저 문화재는 조사도 거치지 않고 매립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지금까지의 주변 해역에서 조사된 것만 보더라도 여러척의 난파선이 있을 것이라고 과거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었다. 하지만 개발만을 위한 것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매장 문화재에 대한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치 않고 있다.


 셋째는 서기 660년 백제가 나라를 잃고, 백제 부흥운동이 전개되고 있을 663년 백제 부흥군은 부안에 주류성을 쌓고 마지막 대대적인 부흥운동을 펼칠 당시 백제와 왜구, 당나라와 신라의 나당연합군인 4개국이 싸우게 되는 해전이 일어났다. 왜선 800여 척과 당나라 해군 170여 척이 동원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당시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해전인 백강전투(백촌강 전투)인 것이다.

 왜선 400여 척이 불타 침몰했다는 기록이 전해지는데, 이곳이 부안 주류성과 가까운 새만금 지역일 가능성이 높다고 일부 역사학자들은 전하기도 한다. 이는 새만금 일대가 고려청자와 같은 조운선들의 난파된 물건뿐만 아니라 다양한 시대의 역사적 배경이 서린 곳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처럼 만경강과 동진강 하구인 지금의 새만금호 유역은 해양생물의 집산지, 해운업의 이동로, 그리고 다양한 시대를 품어왔던 역사를 안고 있는 곳이다. 하지만 정부는 새만금 개발만을 위해서 생태적, 문화적, 역사적 입장에서 바라보지 않고 있다. 새만금신공항 예정지인 수라갯벌에 대한 전략환경영향평가에서도 매장 문화재 조사를 전혀 진행하지 않았다.

 

[새만금 인근 고려청자등 유물 발굴 장소]

 

 국토교통부가 이런 개발만능주의적 사고로 해저 문화재에 대해 침묵을 하고 있지만, 사실 새만금 일대의 해저 문화재 발견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2년 4월 6일, 군산시 옥도면 비안도 해상에서 고기를 잡던 한 어민의 그물에 고려청자 243점이 무더기로 올라왔는데, 12세기 고려청자였다. 이에 문화재청은 2년 동안 5차례나 발굴조사를 벌여 2935점의 청자를 건져 올린 사례도 있다. 또한 2006년 4월, 야미도 인근에서 고려청자 780점이 인양되기도 했다. 더욱이 비안도 부근에서 나온 청자들과 이번에 수라갯벌에서 발견된 것들이 비슷한 모양을 가지고 있어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여진다. 새만금 일대는 예전 해상루트의 꽃이였고, 아직 발견하지 못한 문화재가 더 있을 수 있다는 증거이다.

 

문화재는 그 나라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료다.

수라갯벌은 만경강과 동진강의 거대한 강하구의 일부로 해상 무역선이 지나던 곳의 일부이다. 하루빨리 국가 차원의 전수조사를 진행하여야 할 것이다. 새만금을 이루는 만경강과 동진강 하구 주변에 있는 1000년 문화흔적의 증거들을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모든 것들을 묵살하는 개발만능정책은 달라져야 한다.


오동필(새만금시민조사단 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