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걸음] chapter - 8

군산시민연대
2022-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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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 8

 

 기다리던 주말이 왔다. 오늘은 두 번째 플로깅을 하기로 한 날이고 나는 지난번과 다르게 일찍 일어나 준비를 했다. 더불어 은지에게 전화를 걸어 준비는 잘 하고 있는지 물어볼 여유까지 있었다. 전화를 받은 은지는 아직 준비중이라 준비 다 마치고 전화 할 테니까 끊는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늦잠 잤나?’라고 생각하며 지난번과 바뀐 이 상황이 너무 기분이 좋았다. ‘역시 이게 나지. 이 여유로움. 지난번 나와의 비교로 나는 점점 성장한다.’ 속으로 자화자찬을 하고 나니 기분이 좋아져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누드, 따따랏따라. 예스 아임 누드”  

요즘 유행하는 아이들의 누드를 부르며 춤사위까지 열어 제끼는데 노크도 없이 갑자기 아빠가 들어왔다. 깜짝 놀란 나는 아빠를 향해 소리 지르며 지금 뭐하냐고 말했다. 근데 되려 아빠가 나를 향해 ‘너는 뭐하냐?’라는 눈빛을 보내며 나를 쳐다봤다. 지금 내가 노래 부르며 춤추는 것을 본 건가 싶어 침묵으로 시위 했더니 아빠쪽에서 먼저 말을 꺼냈다.


“딸 오늘 9시 50분까지 은파에 차로 데려다 달라고 하지 않았어? 지금 9시 30분이야.”

“아빠 시간이 됐으면 빨리 말해 줘야지 왜 지금 말해! 준비 다 했어 금방 나갈게.”

 

 문을 닫고 아빠가 나가는 모습을 봤다. 마지막으로 복장을 점검하고 거울을 보며 생기가 없어 보이는 입술에 틴트를 살짝 발라줬다. 요즘 잠을 별로 못자서 그런지 입술색이 없어보였다. 이게 다 승호가 연락을 늦게 해서 그런 것이라고 속으로 탓하며 더 지체하면 내 신조인 미리 도착하기를 시전 못할 듯싶어 아빠 차로 향했다.

  

 은파에 도착했더니 이미 다 나와 있었다. 시계를 보니 약속한 10시보다 분명 10분 일찍 왔는데 모두 나와 있는 모습을 보고 살짝 당황했다. 다들 방금 왔다고 말을 하지만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보니 10분은 더 일찍 와 서로 안부 인사를 물은듯하다. 그리고 은지에게도 한방 먹었다. 분명 전화할 때 준비중이 라고 한지 20분 전이었는데 나보다 먼저 온 것도 모자라 지난번 안 꾸민 듯 꾸민 스타일과 다르게 대놓고 꾸민 스타일로 준비를 단단히 하고 왔다. 청암산과 다르게 은파는 가파른 길도 없고 호숫가 옆으로 산책로도 있어 복장에 크게 문제는 없지만 오늘 내 스타일과는 너무 대조적이었다. 은지는 어떻게 나보다 매번 이렇게 앞서 가는 것인지. 내 생각이 너무 짧았다는 것을 느끼며 오늘도 각자 쓰레기봉투를 하나씩 들고 출발하기로 했다.

 

 승호에게 몇 일전 엄마 때문에 제대로 듣지 못한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나와 승호 둘이 그리고 은지와 재훈이가 따로 걷게 됐다. 그리고 승호는 자세한 것은 모른다며 자기가 듣고 알고 있는 이야기만 해준다고 했다. 재훈이는 1학년 때까지는 조용히 다녔다고 한다. 그러다 2학년이 됐을 때 이국적인 외모와 남들과 다른 성장속도에 주변에서 관심이 집중 되며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뭐 지금도 대단히 많지만 초기에는 재훈이를 한 번도 못 본 사람이 있을지언정 한번만 보고 가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좀 과장하긴 했지만) 그러다 소위 노는 그룹이 재훈이와 함께 놀자고 찾아왔다.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같이 지내는데 3학년이 되면서부터는 좀 달라졌다고 한다. 2학년때 까지만 해도 같이 피시방에 가고 노래방에 가는 것이 다였다고 한다. 가끔은 좀 지나쳐 보일지 언정 그래도 아직은 어려서 그런지 선을 넘지 않았고 나름 ‘의리’를 외치며 지냈다. 한번은 피시방에서 게임을 하는데 건너편에 앉은 학생들이 시비를 걸었다고 했다. 시비 대상은 그룹의 리더 진성이었다. 진성이의 뒷 편에 앉아있던 사람이 게임을 하면서 의자로 진성이 자리를 계속 건드렸다고 한다. 그러다 화가 난 진성이도 똑같이 행동했고 그렇게 게임에서 진 상대편이 화가 났는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본격적인 눈싸움이 시작됐다. 그렇게 모두 밖으로 나가고 재훈이도 뒤따라 나가는데 처음에 상대방들이 진성이에게 시비조로 말하다 재훈이를 보고는 눈만 굴리고 대화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당시 재훈이는 이미 키가 180이 넘은 상태였다. 상대방이 서로 조심하자며 꼬리를 내린 뒤로 진성이 그룹은 더 의기양양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진성이가 저녁 늦게 불렀다고 한다. 학교로 불러 ‘도대체 이 늦은 시간에 왜 부르지?’ 라고 생각하면서 갔는데 친구들은 새우깡을 가운데 놓고 둘러 앉아 각자 영웅담을 늘어놓고 있었다. 그 영웅담의 마지막은 항상 피시방에서 눈빛만으로 제압한 모두 함께한 이야기였다. 다들 기분이 좋아보여서 웃으며 다가 갔는데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고 한다. 다들 기분이 업 돼있고 혀도 꼬이고 해서 봤더니 의자 밑에 술병이 있었다. 항상 선을 넘지 않았던 친구들이라 재훈이는 당황했고 이건 아니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날은 다행이 엄마가 급하게 불러 집에 가게 됐지만 친구들은 그 뒤로도 늦은 시간에 계속 불렀다. 재훈이는 끝까지 그자리에 가지 않았고 조금씩 진성이네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고 한다.

 

 여기까지가 승호가 알고 있는 내용이라고 했다. 재훈이 과거를 듣다보니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고 우리 목표치의 70%는 채워진 상태였다. 뒤를 슬쩍 돌아보니 은지와 재훈이는 하하호호 웃으며 이야기를 잘 나누고 있었다. 찰나의 순간 재훈이와 눈이 마주쳤다. 1~2초의 짧은 순간 나는 형언할 수 없는 많은 감정이 포함된 눈빛을 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평온해 보이는 눈으로 은지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생각에 잠겨 앞을 걸었다. 그런데 갑자기 승호가 나를 툭 치더니 쓰레기를 주우라고 눈치를 줬다. 당황하면서도 쓰레기를 주우면서 속으로 ‘니가 좀 주워주지’ 하며 승호를 살짝 째려봤다. 그런데 딴짓을 하며 흥얼흥얼 앞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자세히 들어보니 (여자)아이들의 <Nxde> 였다. 오늘 아침 일을 생각하며 고개를 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승호 쓰레기봉투보다 더 많이 채우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김우섭(군산한길문고 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