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채경의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군산시민연대
2023-05-01
조회수 277


 우리는 전반적으로 2월쯤부터 강연 계획을 한다. 공모사업을 통해 강연을 연계할 수 있다면 베스트지만 그렇지 못한 것까지 고려하여 작가를 섭외한다. 그렇다보니 부담되는 정도의 사례비를 드려야 되는 경우 우리도 어쩔 수 없이 포기하게 된다. 그렇게 계획을 하던 중 우연찮게 심채경 박사님의 이야기가 나왔다. 2021년도에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라는 책이 있는데 이분이 알쓸인잡에도 출연한 유명한 사람이라고 대표님게 듣게 되었다. 출간한 책도 있으니 출판사에 문의하여 작가 섭외가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말이 오갔고 바로 실행에 옮겼다. 그렇다 우리는 말과 생각보다는 일을 먼저 저지르고 뒷 수습을 하는 타입이라 시행착오를 크게 겪지만 그만큼 실행력은 빠른편이다. 그렇게 심채경 작가님을 모시게 되었다. 그래도 걱정했던것과는 다르게 사례비는 높지 않았다. 속으로 ‘이렇게 유명한 분이 오시는데 정말로 이정도만 드려도 되는것인가?’라고 생각을 했지만 서점은 가난하고 몸밖에 없으니 우리는 몸으로 때웠다. 온라인 독서모임 [그믐]에서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로 독서모임을 바로 시작을 하였고 박사님의 책을 2주에 걸쳐 나눠 읽었다. 솔직히 에세이에 페이지 수가 많지 않다보니 2주라는 시간은 길게 잡은 감이 있었다. 우리는 이 책을 느린 걸음으로 꼭꼭 씹어먹었다. 그렇게 나눈 글은 소위 벽돌책 한 권 읽은것만큼의 값어치를 했다.

 

“일기 속에는 두려워하는 내가 있다. 졸업할 수는 있는 걸까 두려웠고, 졸업 후에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두려웠다. 어쩌면 졸업 후의 더 큰 두려움을 유예하기 위해 수료생의 고뇌에 천착했는지도 모른다. 돌이켜 생각해보건대, 도중에 그만두지 못했던 것은 떠날 용기가 없어서였다. 그러나 남은 채 버텨내는 데도 역시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떠난 이들은 남지 못한 게 아니라 남지 않기를 선택한 것이었고, 남은 이들은 떠나지 못한게 아니라 떠나지 않기를 선택한 것이었다. 이제는 안다. 어느 쪽을 선택했든 묵묵히 그 길을 걸으면 된다는 것을. 파도에 이겨도 보고 져도 보는 경험이 나를 노련한 뱃사람으로 만들어주리라는 것을. 다시 새로움을 향해 떠나야 할 때,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파도가 밀려오는 것을 느낄 때, 나는 과거의 나를 찾아간다.”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p.31

 

지난 날에는 ‘어렸을 때 공부 좀 더 해놓을걸’, ‘아 그때 기회를 잡았어야하는데’, ‘그때 그렇게 했으면 안되는데’ 등 선택에 있어 후회를 하는 경향이 많았다. 어느 순간 현재 삶에 최선을 다하는 방향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그리고 이 글을 보고 지난 내 경험들이 나를 [노련한 뱃사람]으로 만드는 과정이었구나 라는 결론에 닿았다.

 

“사회의 요구애 의해 다니는 것치고는 너무 비싼 개인적 비용과 시간을 지불하고 있는 대학생들. 대학이 그들에게 ‘배운 것’보다 배우는 즐거움과 괴로움을,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만의 의견을 갖는다는 것의 뿌듯함을 일깨워주기를 바란다. 자신을 발견하고 받아들이고 눈을 들어 앞으로 나아갈 세상의 바라보는 법을 배우는, 그 즐거움과 괴로움을. ‘우주의 이해’에서도, ‘글쓰기의 이해’에서도, ‘시민교육’이나 ‘전자기학’, ‘천제물리학 개론’에서도 가르쳐주길 바란다. 어쩔 수 없이 대학을 꼭 다녀야만 한다면, 대학 졸업장이라는, 그 한없이 틀에 박힌 문서 하나가 주는 즐거움과 보람을 위해 기꺼이 젊음을 바칠 수 있기를, 넘치게 바란다.”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p.62-63

 

90년대에는 대학 진학보다는 가정형편상 취업을 먼저 나갔었다. 그러다 21세기가 왔고 지금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을 진학하는 것은 당연한 생각으로 바뀌었다. 우리가 되고 싶은 직업의 전문 분야를 배우고 졸업 하면 공무원 시험을 본다. 그러다보니 대학에서 배운것은 사회에서 크게 도움이 되지 않고 어렵게 갖게된 직장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대학교는 그저 우리의 이력서에 한줄 더 추가 할 수 있다는 것 뿐이다. 글에서 처럼 비싼 비용과 시간을 지불해야 한다면 한줄 짜리 이력서가 아니라 더 많은 것을 얻어야지 않을까?

 

“초승달이나 보름달은 보는 이가 많지마는 그믐달은 보는 이가 적어 그만큼 외로운 달이다. 객창 한등에 정든 임 그리워 잠 못들어 하는 분이나, 못 견디게 쓰린 가슴을 움켜잡은 무슨 한 있는 사람이 아니면 그 달을 보아주는 이가 별로 없을 것이다.(...)

내가 한 있는 사람이 되어 그러한지는 모르지마는, 내가 그 달을 많이 보고 또 보기를 원하지만, 그 달은 한 있는 사람만 보아주는 것이 아니라 늦게 돌아가는 술주정꾼과 노름하다 오줌 누러 나온 사람도 보고, 어떤 때는 도둑놈도 보는 것이다. 어떻든지, 그믐달은 가장 정있는 사람이 보는 중에, 또는 가장 한 있는 사람이 보아주고, 또 가장 무정한 사람이 보는 동시에 가장 무서운 사람들이 많이 보아준다.”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p187

 

위 글은 일제 강점기의 작가 나도향이 조선문단 문예지에 발표한 <그믐달>이라는 글이다. 책에서 가쿠타 미쓰요의 <종이달>이라는 소설에서 초승달에 대한 설명하는 구절이 있다. 주인공이 새벽녘 하늘에 떠있는 초승달을 손으로 지우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과학자의 눈에는 말이 안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새벽녘에 뜨는 달은 초승달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시간에 만약 달이 보인다면 그것은 그믐달이고 초승달은 초저녁 쯤에나 보이는 달이라는 것이다. 그해 비해 우리나라 사람이 쓴 글은 과학적 고증이 정말 잘 된 글이다. 사소한 것이지만 이런 과학적인 것과 함께 글을 읽다보면 또 다른 재미가 있다.

 

책 읽는 재미가 늘어났다.


김우섭(군산한길문고 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