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걸음2] chapter 3

군산시민연대
2025-05-06
조회수 149


3. 태희

 

 학교가 즐겁지가 않다. 요즘 가영이와 더 멀어지고 있는거 같다. 그리고 가영이도 나 말고 다른 친구와 더 친하게 지내고 있는 듯싶다. 아무리 자리가 멀리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우리의 우정이 겨우 이정도 였다 싶기도 하다. 그래도 1년 이상 함께 했던 친구였는데..


 사건은 2주일 전 자리 배치가 시작이다. 일단 내 자리는 가운데에서 약간 뒤쪽에 배치 됐다. 칠판과 너무 멀지 않아 좋았고 내 옆으로 온 짝궁도 공부를 하는 친구여서 나쁘지 않았다. 다만 쉬는 시간에 시끄럽게 굴면 눈치를 주는 친구지만 이정도면 양호했다. 가영이는 멀지는 않은 자리에 뽑혔다. 그리고 3학년 올라오면서 우리 무리에 말을 걸어오던 소은이와 짝궁이 됐다. 그랬는데.. 내 옆자리 짝궁이 눈이 나빠 앞자리로 가고 싶다고 선생님게 말했다. 근데 하필 바꾼 친구가 전 가영이 짝궁이었다. 하필이면 민지하고..

 

 민지는 아무 말 하고 있지 않으면 우리와 다르지 않다. 평범한 학생같아 보이지만 말을 시작하면 다르다는게 느껴진다. 착해 보이지만 공부에 집착을 한다. 그리고 수업을 그 누구보다 열심히 듣지만 그에 반해 성적은 좋아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필기구를 자주 잊어버린다. 그러다 보니 옆사람에게 빌리는데 돌려주면 좋은데 까먹고 잊어버린다. 그러다보니 아무도 민지에게 필기구를 빌려주지 않는다. 어느 날은 문제를 풀다 잘못 썼는지 가영이에게 지우개를 빌렸다. 그리고 5분만에 그 지우개에 대한 행방이 묘연해졌다. 가영이가 따지고 물었는데 순간 ‘내가 안그랬어’ 라며 민지가 크게 소리질렀다. 계속 반복해서 말하니 주변 이목이 쏠렸고 민지는 몇 번더 반복해 말하고 반을 나갔다.

 

그 뒤 지우개는 찾지 못했지만 민지가 물건을 빌려달라고 하면 없다고 핑계를 대거나 정 어쩔 수 없으면 사용하자마자 빼앗드시 물건을 돌려받았다. 그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 봐왔지만 가영이를 이해하면서도 속으론 ‘그냥 빌려주지 없어지면 뭐 어때’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내가 그러고 있으니 상황이 너무 답답했다. 지금까지 빌려주고 없어진 지우개만 5개가 넘는다. 4개는 새로 산지 몇 일 되지도 않은 거의 새지우개나 다름없었다. 이제는 더 빌려주기도 힘들었다. 지우개가 없어질 때마다 사는 것도 부담이고 정신적으로도 매우 힘들었다. 지우개가 감쪽같이 사라진다는 것도 어이가 없었다.

 

 쉬는 시간이 되면 가영이와 소은이가 있는 자리로 가서 둘의 이야기를 듣다 수업중에 민지와 있었던 나의 답답한 말을 자주 하게 됐다. 처음에는 특히 가영이가 많이 이해해주고 들어줬지만 어느 순간부터 감정없이 대답하고 대화 주제를 빠르게 바꿔갔다. 그러면서 이제는 내가 둘의 자리에 가지 않아도 나에게 오지 않았다. 점심만 함께 먹는 친구가 되었다.

 

 이상하게 오늘은 점심도 먹기 싫어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자리에 엎드렸다. 누군가 와서 깨워주겠지라는 생각에 그대로 있었는데 점심시간이 끝나는 종이 칠 때까지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았다. 종소리와 함게 고개를 들어 가영이 쪽을 쳐다봤는데 잠깐 눈이 마주치는 느낌이 들었지만 바로 고개를 돌려 다른쪽을 보고 있었다. 교실문이 열리면서 선생님이 들어왔다. 이번시간은 수학시간이고 시험이 끝났지만 매일 조금씩 공부하는게 중요하다면서 시험에 출제될만한 문제를 수시로 뿌리는 선생님이었다. 그러다보니 평소 필기가 중요했지만 나는 손을 들어 선생님께 말했다.


“쌤, 저 배가 너무 아파서 그런데 양호실 갔다와도 될까요?”


 선생님은 나의 눈을 짧게 쳐다봤다. 짧은 시간이지만 나에겐 길게 느껴졌고 나의 속을 꿰뚫어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내가 아무 감정 없이 계속 바라보자 선생님은 갔다오라고 말하셨고 수업을 재개하셨다. 그렇게 교실을 나와 양호실로 향했다. 양호실로 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솔직히 아프지도 않은데 양호실에 가는건 양심에 찔렸다. 어쩌다 필요한 물건을 챙기지 못했을 때만 한번 가봤지 일탈이 필요 없는 나에겐 특별한 경험이었다. 양호실 문 앞에서 가슴이 두근거렸는데 막상 문을 열고 들어가니 양호 선생님께서 친절하게 맞이해주셨다.


 배가 아파서 왔다는 소리에 양호 선생님도 나를 짧게 쳐다보곤 침대에 잠깐 누워있다 가라고 하셨고 온열팩을 배에 올려 놓으라며 주셨다. 배에 느껴지는 따뜻한 느낌에 기분이 좋아졌다. 날씨가 슬슬 더워지고 있어 땀이 살짝 나긴했지만 누군가 나를 꼭 안아주는 느낌이었다. 이런 느낌을 받기 위해 한 번씩 양호실에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너무 자주 사용하면 블랙리스트에 올라가겠지..

 

 지금은 잠시 머리 아픈 것들은 모두 잊고 싶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이상한 생각이 계속 떠올랐다. 종국엔 내가 학교생활을 잘 해낼 수 있을지 의문까지 들었다. 배에 느껴지는 따뜻한 기운에 집중하며 머릿속 생각을 잊으니 갑자기 졸음이 다가왔다. 피곤한건 아닌데 배가 따뜻하니 갑자기 머리가 햐애지면서 졸음이...그대로 나는 잠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