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걸음] chapter 15~16

군산시민연대
2023-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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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 예지

 

이렇게 주말이 기다려지기는 처음이다. 지난번에 모인 후로 각자 연습을 하고 주말에 모여 다함께 연주하기로 했다. 한 곡을 먼저 연습을 마치고 다음곡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문제는 승호다. 지난번 연습 때 승호는 정말 악기를 처음으로 다뤄보였다. 아무리 시간이 좀 있다고 해도 이대로라면 시간에 맞춰 연습을 못할 것 같은데 은지하고 둘이서 키득키득 거리며 웃기나 하고 정말 웃기는 짬뽕이다. 주말에 하는 것 봐서 따끔하게 뭐라고 해야겠다. 시간이 아무리 남았다고 해도 한 달에 한 곡씩 연습하면 3곡까지는 3달이나 걸린다. 우리야 그렇다 치지만 이러다 정말 승호는 한손에는 탬버린 다른 손에는 캐스트너츠를 들판이다.

“에휴.. 같이 연습하자고 연락이라도 해봐?”

휴대폰으로 김승호를 검색하여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통화음이 아무리 울려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게임을 아무리 좋아해도 통화음이 몇 번 울리면 전화를 받았던 승호다. 하지만 기특하게 연습중인가? 아쉬움을 남기며 통화 종료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통화가 연결이 되었다. 결론적으로는 통화가 꺼졌다. 나는 당황하며 바로 전화를 걸었다. 근데 왠걸 다시 전화를 안받는 것이다.

“야는 뭐하는 아이라냐…”

계속 기다려도 전화가 연결이 되지 않아 결국 포기하고 집으로 걸어갔다.

 

다들 어떻게 연습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은지는 노래를 잘 부르니까 조금만 연습하면 될 것이고, 재훈이가 한 번씩 승호를 봐주는 것 같았다. 따로 연습하다가 주말에 모여서 다같이 합주를 한다고 하지만 왠지 아쉬웠다. 평일에도 같이 하고 싶은데 괜히 나때문에 연습을 못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집에 오자마자 피아노로 두 번 정도 쳐본 뒤 들어줄만 한 듯 보여 바로 동영상을 찍었다. 그리고 ‘재훈과 아이들’ 톡방에 올렸다. 속으로 다들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했다. 나름 초등학생때 부터 연습해온 나의 피아노 실력에 감탄은 물론 찬양까지 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발동 됐고 그정도 까지는 아니더라도 큰 박수와 함성이 나오길 바랬다.


하지만 오늘따라 카톡의 숫자 3이 하나도 줄어들지 않았다. 이유가 뭐지? 하물며 카톡 보내고 1초 만에 본다는 뜻으로 1초은지 마저 읽고 있지 않았다. 이건 무슨 일이 있는 것이다. 나 빼고 톡방이 하나 더 있나? 매우 합리적인 의심이 들 무렵 숫자 하나가 줄어들고 은지의 답장이 왔다.

 

은지 : 오~역시 예지 녹슬지 않았네 >.< 꺄~~

나 : 이 정돈 발로쳤지. 영상 자세히 보면 손 쓰는 것 안보여ㅋㅋㅋ

은지 : 손하고 발하고 바꿨니?

나 :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만큼 잘 친다고 칭찬 더해 달라고…

은지 : 우쭈쭈 우리 예찌 그래쬬요~~

 

그렇게 은지의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숫자는 2에서 더 줄지 않고 있었다. 이놈의 남자 둘은 뭐하는 것인지..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만든다고 하는데 이런 칭찬에 인색한 인간들.. 그렇게 속으로 재훈이와 승호에게 야속해 하고 있었는데 동영상 하나가 올라왔다. 은지가 내가 친 피아노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영상이었다. 순간 소름이 돋으면서 깜짝 놀랐다. 은지가 노래를 잘 부른 것도 있지만 우리 둘이 이 노래로 연결된 느낌이 들었다. 진짜로 음악 작업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잠시 후 은지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어때 내 노래?”

정작 본인은 부끄러운지 조심스레 물어봤다. 하지만 그 안에 당당함도 같이 느껴졌다. 그런 은지가 나는 너무 좋았다.

“뭐야~ 나만 칭찬 받으려고 했는데 오히려 내가 뭍히겠는데?! 장난 아니야. 너무 잘했어!”

칭찬은 칭찬으로 돌려줘야지. 뭐든 곱절로!

 

그렇게 서로 칭찬을 하고 고쳤으면 하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5분정도 이야기를 나누고 좋아하는 가수와 연예인 이야기로 넘어가 버렸다. 그렇게 대화를 하다보니 통화만 30분을 하고 말았다. 나도 모르게 깜짝 놀라 전화를 끊고 학원에서 받아온 숙제를 시작했다. 숙제를 하는 내내 생각이 들었다. 이게 노래구나. 노래방에서 부르기만 하던 노래와 연주부터 합주까지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게 음악이구나. 하고 생각이 들었다. 뭐 이제 우리 둘밖에 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모두와 함께 할 연주가 기대되었다.


16. 예지


결국 답장은 하루가 지나고 나서야 왔다. 이 남자 둘은 같이 연습을 한 것이 분명하기는 하다. 답장한 시간도 둘이 똑같고 대답도 똑같았다.

“와! 은지 대박!”

아니 은지를 노래 부르게 만든 피아노 음악이 누군데. 왜 난 칭찬을 하지 않고 은지만 칭찬을 하냐고..마음속으로만 외쳤다. 마음이 아프다. 나도 노래부를껄..하지만 내가 노래 부르고 은지가 피아노 쳐도 은지 칭찬을 하겠지?

재훈이는 크게 걱정을 할 게 없었다. 오랫동안 독학으로 기타 연주를 하다 보니 은지가 보낸 피아노와 보컬 합작에 기타까지 엮어 다시 동영상을 업로드 시켰다. 아직 드럼이 들어 있지 않은데도 벌써 끝내 줬다. 재훈이는 베이스도 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래도 만족한다고 말하는데 여기서 누군가 들어 온다는 건 상상이 안됐다.


승호도 혼자 드럼 치는 동영상을 올렸는데 이제 4일 연주 한 것 치곤 잘했지만 아직은 많이 멀어보였다. 박자가 살짝 들쑥날쑥 했고 실수가 조금씩 나왔다. 그래도 연습한다고 게임도 안하고 어제는 답장도 안하고 칭찬 받을 만 했다. 어? 그런데 생각해보니 어제 답장도 안하고 연습만 한건 칭찬할게 아닌데? 당근 하나 주고 채찍 하나 줘야겠다. 다음부터는 아리따운 여성이 연락을 보내면 1초은지가 아니라 0.5초승호가 되라고 말이다.

 

오늘은 학원 끝나고 노래패 놀자 연습실에 가볼 예정이다. 재훈이는 바빠서 오지 못하지만 혹시라도 시간 되면 뒤늦게 온다고 했고 승호는 재훈이에게 비밀번호를 전달 받아서 매일 연습을 간다고 한다. 하루에 5시간정도 연습을 하는데 점심 먹고 저녁 먹을 때 쯤 해서 집에 간다고 하니 지금 가면 잠깐 볼 수 있을 것이다. 놀자패에서 연습하다가 배고프면 먹을 것을 사서 먹어도 된다고 했다. 대신 정리만 잘해주고 연습 끝나면 항상 불 끄고 전기 내리고 가달라고 한다. 원래 일반인에게 공간을 대여 해주지 않는데 재훈이 친구들이니까 특별히 내준다고 한다. 옛날에는 주변에 쓰고 싶다고 빌려줬는데 정리도 제대로 하고 가지 않고 결정타로 먹고 난 후 그릇을 그대로 올려놓고 간 것이다. 그 뒤로는 연습실을 따로 내주지 않았는데 몇 년만에 우리가 부탁해서 다시 생각해보자고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아직까지 먹을 것을 사 먹어본 적은 없지만 다 같이 음악하고 음료수라도 마시면 좋을 것 같다. 아무튼 지금 승호가 연습하고 있다고 하니 피아노와 맞춰볼 겸 그리고 음료수도 줄 겸 움직였다. 지난번 커피는 못 마신다고 해서 바보같이 아메리카노를 시켜 바꿔줬는데 나중에 한 모금 마셔보더니 입에 맞다며 요즘 커피를 마시는 사진을 올렸다. 그래도 이제는 “얼죽아 얼죽아.” 외치면서 다닌다. 점점 아재 탈출해 가는 듯하다. 취향이며 말투가 요즘 많이 좋아졌다. 이게 당연한 걸텐데 말이다.

 

시청 근처 연습실까지 와 문 근처에 다가가니 드럼소리가 경쾌하게 들렸다. 생각보다 잘 치길래 동영상 틀어놨나 싶었는데 그런 것 치고 너무 리얼하게 나서 새삼 깜짝 놀랐다. 어제 올린 영상만 해도 잘 못 쳤는데 하루 만에 이렇게나? 싶었다. 안으로 들어갔는데 정말로 승호가 드럼 앞에 앉아 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찐 감탄과 칭찬을 바로 장착했다. 그렇게 연주가 마무리 되고 가까이 다가가 바로 칭찬해줬다.

“와 진짜? 어제 영상은 이정도 아니었는데, 벌써 이렇게 늘은거야?!”

내 대답에 어색하게 답하며 애드리브로 드럼을 쳤다. 비록 짧지만 그래도 4일 만에 이정도라면 앞날이 창창해 보였다.

“나 재능 있는 것 같아. 오후에 연습하고 집에 가서 리듬 게임하고 태고의 달인까지 연습하고 있어. 그래도 실제로 치는 것만 못하지만 도움은 되네. 그래도 은지가 너무 잘해서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아..”


역시나 나에 대한 칭찬은 없었다. 은지는 뭐 원체 잘하니 입이 닳도록 계속 칭찬을 받아도 마땅하지만 아니 내 피아노도 좀 칭찬해주면 어디 덧나나? 아쉬운 마음을 속으로 들이켰는데 내 마음의 소리가 컸는지 승호가 내 피아노를 칭찬해줬다.

“노래도 좋았지만 피아노가 있으니까 노래가 더 듣기 좋더라. 역시 피아노가 있어야되. 그래야 노래가 더 잘 들리네.”

이건 내 칭찬이 맞는데 은지 칭찬에 뭍혔는지 칭찬이 들리지 않았다. 아니 칭찬따위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야! 승호. 피아노가 있어서 노래가 돋보인거야. 피아노가 없으면 안그랬어. 피아노가 잘해서 그런거야.”

승호가 약간 웃음기를 보이며 피식피식 웃더니 “응 피아노가 다했네.” 하면서 드럼쪽으로 이동했다.

 

커피따위 주지 말고 연습만 하고 갔어야 하는데 내가 너무 성급했다. 그래도 커피는 맛있다며 고맙다고 말하니 성급하다고 느낀 마음은 무르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의 연습이 시작 됐고 30분정도 서로 부족하거나 맞췄으면 하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했다. 처음보다는 박자감도 많이 늘었고 애드리브도 생겨서 지루하지 않는 드럼이 되었다. 그리곤 10분 정도 공을 들여 승호의 드럼까지 합쳐 우리 4명의 연주를 하나로 합쳤다. 다함께 연주 하는것 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모두가 한자리에서 연주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 들렸다. 내일이면 모여서 연주하겠지만 그래도 오늘은 이 노래를 계속 들으면서 잠에 들것 같다. 진정한 재훈이와 아이들이 만들어 진것이다. 이제 겨우 한 곡 연습한 거지만 이런 재미가 있다면 2곡도 금방 끝날 것이다. 지금 아로하도 제대로 연주하기 위해선 몇 주 더 연습해야 하지만 고등학교에 올라가기 전 마지막으로 공부가 아닌 ‘진짜’를 하고 있다.

 

팽나무 문화재를 위하여.

재훈이와 아이들을 위하여.

미군 고백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