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걸음 2] chapter 5

군산시민연대
2025-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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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태희

 

 집에 혼자 있는 시간에 베이스를 친다. 베이스의 굵직한 소리가 내 심장을 울린다. 하지만 베이스 소리만으론 곡을 완성시킬 수는 없다. 우리의 밴드 ‘다섯걸음’이 모여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 요즘 언니 오빠들은 많이 바쁘다. 한 달 전 연습실에서 모이고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상황에 이젠 익숙해졌다. 학교에 가서 혼자 있을 때 공부하거나 노트에 낙서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점심시간에 혼자 밥도 잘 먹고 더 이상 아프지도 않고 지우개도 잃어버리지 않는다.

이번 1학기 동안 나는 정말 많이 성장했다. 그리고 몇 일만 더 버티면 여름방학이 시작된다. 시험 성적 발표는 아직이지만 가채점 해봤을 때 중간고사 때보다 성적이 좋아 보였다. 집과 학교를 반복적으로 몇 번 더 왔다 갔다 하면 한 달 정도 집에서 푹 쉴 수 있다.

 

방학이 끝나면 다시 자리를 바꿀 것이다. 먼저 민지와 짝궁만 안 된다면 좋을 것 같다. 그렇게 되면 ‘가영이와 관계가 다시 회복될 수 있을까’ 생각을 해봤지만 그렇지만도 않을 것 같다. 그러기엔 우린 너무 서로 보이지 않는 상처를 줬다. 그리고 각자 무엇을 잘 못했고 뭘 사과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시 친해질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게 지금 현재 생각이다. 약간 될 대로 되라는 생각으로 살란다. 남 생각하며 살아보니 내 머리만 아프고 몸만 아팠다. 좀 단순하게 생각하며 살아야지.

 

평소와 같이 4교시까지 보내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급식실에 줄을 서고 식판을 받아 배식을 받았다. 앉을 자리를 찾다 보니 빈자리가 두 개 보였다. 그런데 하필 비어도 가영이와 민지 자리가 비었다. 다른 누군가 일어나 자리가 비면 앉아야지라는 생각으로 천천히 걸어갔지만 자리는 나오지 않았다. 1분 넘게 서 있는 것도 우스워 자리에 앉았다. 아무 생각 없이 앉은 자리는 민지의 앞자리였다. 가영이와 마주보고 밥을 먹으면 채할 것 같고 그나마 짝궁이면서 밥 먹을 때라도 편히 먹으려면 이 자리가 베스트였다. 천천히 먹고 교실에 늦게 들어가야지 생각하고 먹는데 가영이가 밥을 다 먹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내 뒤로 지나가면서 작게 “재수없어.” 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당황하며 지나가는 가영이를 봤지만 나를 무시하며 급식실을 나갔다.

그리고 내 앞에서 밥을 먹는 민지를 쳐다봤는데 나는 실소가 나왔다. 민지는 편안하게 식판에 코를 묻고 밥을 먹는 중인데 작은 소리에도 흔들리는 난 도대체 뭐람.  오전에 스스로 성장했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바로 퇴보하고 말았다.

 

느즈막히 교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수업 시작까지 10분 정도 남아 교과서를 펴고 공책에 낙서를 시작했다. 우리 밴드가 공연하는 모습을 그리며 시간을 보내는데 옆에 누가 서있는 게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 옆을 보니 가영이가 서있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걸기 시작했다. 수업을 알리는 종소리가 치자 인사를 하고 자리로 돌아가는데 그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워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 갔나 착각을 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선생님이 앞에 계셨고 수업이 이미 시작한 뒤였다. 어영부영 수업을 받고 쉬는 시간이 되자 다시 또 가영이가 날 찾아왔다. 몇 마디 나누고 끝나고 집에 같이 가자고 말을 한다.

오랜만에 가영이와 대화하는 게 너무 기뻐 난 그 제안을 바로 수락하였다. 수업이 끝나고 정말 오랜만에 가영이와 함께 하교를 하게 됐다. 단둘이 되어 걸어가는데 가영이가 함께 다니던 친구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이야기는 어느새 험담으로 바뀌고 나의 동의를 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뜨뜨미지근한 반응에 더 이상 뒷담화를 하지 않고 어제 새로 시작한 웹툰 이야기를 했다. 헤어질 구간이 와 서로 인사를 하고 집으로 향하는데 휴대폰을 보며 빠르게 무언가를 입력하는 가영이의 뒷모습이 웬지 모르게 차갑게 느껴졌다.

 

다음날 가영이에게 함께 등교하자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학교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어제 가영이와 헤어진 장소에서 10분 정도 기다렸지만 메시지에 답도 없고 가영이도 보이지 않았다. 더 기다리다간 지각을 할 수 있어 학교로 갔다. 그리고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가영이는 이미 자리에 있었다. 어제 험담을 했던 친구와 함께.

나는 아무 말 없이 자리에 앉았다. 가방을 책상에 걸고 옆을 쳐다보는데 두 개의 시선이 한 번에 사라졌다. 잠깐 0.1초 정도 눈을 마주친 듯 했지만 예감이 좋지 않았다.

여름 방학까지 며칠 남지 않았는데 남은 몇 일이 길게 느껴질 것 같다. 겨우 마음에 안정을 찾았는데 하루 만에 흔들리게 됐다.

어른들은 지금 친구 결국 커서 안 만나니 걱정하지 말라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정말 커서 만나지 않을 수 있지만 지금 중3을 관통하는 나에게 단 하나뿐인 친구인데... 그 많은 학우들 중 어떻게 하다 보니 가영이와 친해졌다. 1년을 함께 했고 3학년이 되어 같은 반이 돼서 매우 기뻤다. 함께 많은 추억을 나눴다.

그러다 보니 지금 이런 상황이 너무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