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걸음] chapter 16 . 은지

군산시민연대
2024-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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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걸음] chapter 16 . 은지

 

다들 바쁜지 연락이 안된다. 예지는 할머니 병간호를 해야 한다고 해서 전 만큼은 아니라도 가끔 연락이 가능했다. 그래도 노래방에 같이 가서 연습을 하고 싶은데 가는 것은 불가능 했다. 혼자서 가긴 싫고 누군가 함께 가고 싶다고 예지한테 말하니 재훈이한테 같이 가자고 말하라고 한다. 연습하는 핑계로 말하면 재훈이도 흔쾌히 허락 할 거고 정말로 연습때문에 그런거니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전혀 사심이 1%도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연습 때문인데? 예지가 나에게 최면을 걸어줬다. 그렇게 최면에 걸려 재훈이한테 전화를 걸었다. 다행이 재훈이가 전화를 받았고 재훈이도 보컬과 합을 맞춰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게 한 시간 뒤 수송동 노래방에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을 잡자마나 나는 예지한테 보고 문자를 보내고 준비에 들어갔다. 예지를 보면 아직 화장하는 실력이 부족해서 화장한 티를 너무 내는데 우리 나이 때는 화장을 안하는 게 이쁘다고 어른들이 말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우리 나이 애들은 이쁘기는 하지만 화장을 안하면 더 이뻐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꾸안꾸(꾸민듯 안 꾸민듯) 스타일로 해야한다. 대놓고 꾸미는 건 쉽지만 꾸안꾸는 어렵다. 난 분명 꾸몄지만 안 꾸민 듯 해야 한다. 이 사이를 오가는 기술은 하루아침에 터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 약속장소에 가서 기다리는데 멀리서 재훈이가 오는게 보였다. 분명 다 온거 같은데 아직도 걸어 오는 게 보인다. 키도 크고 잘생겨서 정말 멀리서부터 눈에 띄어 오는데 5분은 걸린 거 같다. 아니면 내가 재훈이를 잘 알아보는건가? 싶지만 주변의 반응을 보니 그건 아닌 거 같다. 잘생기긴 잘생겼다. 그런 재훈이 등에 기타가방도 매어 있었다. 오늘 정말 연습만 하려고 왔나 보다. 그래도 이 핑계로 재훈이와 노래방 데이트를 즐길 수 있어 기뻤다. 그렇게 노래방에 들어가 가볍게 목부터 풀었다. 재훈이는 잠깐 화장실에 갔다 오는 듯 보였는데 양손에 물을 쥐고 오는거 보니 센스도 뛰어났다. 역시 내가 보는 눈이 좀 있다니까.

 

서로 한 곡씩 부르며 목을 풀어 갔다. 실제로 노래를 부르는 건 오늘 처음 봐서 설렜다. 노래를 잘 불러서 설레기도 했다. 내가 노래를 부르는데 재훈이가 갑자기 기타를 꺼냈다. 그리곤 조율을 하더니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 모습을 보니 마치 티비에서 나오는 고백하기 위해 남자가 준비하는 모습 같았다. 드디어 나에게 고백을 하는 것인가?! 그렇게 내 노래가 끝나고 재훈이를 바로 보는데 익숙한 노래가 나왔다. 아로하가 나왔고 다음 곡을 보니 우리가 연습하기로 했던 곡이었다. 아..역시 고백은 아니겠지 설마 연습하러 왔는데 고백을 갑자기 하지는 않겠지. 속으로 생각하며 노래를 부를 준비를 했다.

 

재훈이의 기타소리가 잘 들리지는 않지만 그래도 둘이 호흡을 맞춰 노래를 부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재훈이의 눈빛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우리 뭔가 잘 맞는듯?! 그렇게 생각하며 노래를 부르는데 갑자기 우리 방으로 남자 세 명이 들어왔다. 학교에서 봤던 애들인데 평소 행실이 좋지 못해 가깝게 지내지 않았다. 하지만 학교에서 재훈이를 괴롭힌다는 건 알고 있었다. 이제 졸업도 해서 서로 다른 학교에 갔으니 이런 괴롭힘도 끝날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나보다. 세 명 중 리더격으로 보이는 한 명이 재훈이를 보고 팔자 좋다며 빌린 돈은 언제 갚을 거냐고 물었다. 그 질문에 답하지 않아 잠깐 동안 음악의 전주만 흐르고 있었는데 한 명이 다가오더니 음악을 꺼버렸다. 그리고 그 리더가 다시 물었다.

 

“돈 언제 갚을 거냐?”

“.. 처음에 니가 친구니까 주는 거라며.. 그리고 솔직히 빌려 준 돈 다 갚았자나!”

“그땐 친구고 이젠 아니고. 그리고 이자가 늘어났는데 어쩌냐?”

“이자? 무슨 이자? 니가 은행이냐? 아니면 사채 꾼이냐?”

“내가 그럴 줄 알고 녹음 했지.”

 

그렇게 휴대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돈을 빌려주겠다는 말과 교묘하게 이자가 있는데 줄 수 있냐고 녹음이 되어 있었다. 이자는 진짜 사채 꾼 같이 높았고 재훈이의 목소리는 무엇 때문에 급한지 알겠다고 대충 말하고는 돈을 빌리고 가는 듯 했다. 녹음 된 정황만 들으면 재훈이가 다 알고 빌린 듯 해보였다.

 

세 명중 리더가 나를 힐끔 보더니 정 안되면.. 이라고 말을 줄이길래 재훈이가 닥치라고 말하며 상대방을 노려봤다. 그랬더니 웃으며 알겠다며 우리가 그렇게 쓰레기는 아니라며 그럼 어떻게 할 건지 물었다. 그리곤 기타를 쳐다보더니 그 기타 비싸 보인다며 담보로 맡아야 겠다고 말했다. 재훈이가 째려보며 반항할 듯 보이자 나머지 두 명이 내 쪽으로 다가오려고 했다. 재훈이는 당황하며 알았다고 말한 뒤 기타를 가방에 잘 넣어 상대에게 줬다. 그렇게 웃으며 2주 내로 돈 만들어서 안오면 이 기타는 어떻게 될지 알아서 상상하라고 하며 자리를 떠났다.

 

상대방이 말한 금액이 생각보다 커서 재훈이가 무엇에 돈을 빌린지 궁금하지만 차마 이 자리에서 물어보기는 힘들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있어서 재훈이가 편하게 행동하지 못한 듯 해서 미안했다. 괜히 나 때문에 저 일진그룹 애들한테 기타도 뺏기고 최악의 상황으로 간 거 같았다. 오늘 내가 괜히 노래방에 오자고 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