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걸음] chapter 15. 예지

군산시민연대
2024-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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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걸음] chapter 15. 예지

 

오늘도 학원이 끝나고 집에서 피아노 연습을 했다. 나머지 2곡도 부지런히 연습해야 한다. 이제 정말 2주 밖에 남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플로깅을 시작으로 은지, 승호, 재훈과 함께 하면서 많은 추억을 쌓았다. 학교 다니면서 보냈던 시간보다 지금 이 시간이 더 행복했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나중에 대학 진학을 위해 스펙을 쌓는 것도 아닌데 더 보람차고 하루하루가 기대 되었다. 팽나무 축제를 기점으로 다시 공부에 전념해야 하겠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은 잊고 밴드 연습에 집중을 하려고 한다. 때마침 아빠가 퇴근하고 집으로 들어 왔다. 평소 늦게 들어오는데 오늘은 일찍 들어 왔다. 그리고 나를 보더니 오늘도 피아노 연습 하냐고 물었다. 뻔히 보면 아는데 왜 물어보는 건지.. 공부하라는 말을 돌려서 하는 건가? 짧게 생각했지만 아빠의 깊은 의도를 알아챈 거 같아 찜찜하면서도 대꾸하지 않았다.

 

첫 번째 선곡했던 아로하를 한번 연습하고 바로 다음 2곡을 연습했다. 준비가 다 됐다고 연습을 하지 않으면 나중에 실수 할 수 있어 루틴처럼 다른 곡을 연습하기 전에 한번 쳐보고 있다. 그렇게 연습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아빠가 같이 밖에 나가자고 했다. 연습 시간도 많지 않고 축제까지 2주 밖에 남지 않아서 나가기 싫은데 아빠의 눈을 보니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걸까? 내가 물었더니 할머니가 편찮으신데 예지를 꼭 보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제작년 까지 멀쩡하셨는데 작년부터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 검사를 받아보니 암이 재발해서 상황이 더 나빠졌다고 한다. 7년 전 아빠 회사에서 하는 건강검진을 통해 할머니의 암을 조기에 찾을 수 있었다. 수술도 성공해서 좋아지는듯 했는데 지금은.. 재발 됐을 경우 전보다 더 크게 나빠진다고 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말기라고 한다. 나는 공부 때문에 병원에 오지 말라고 했는데 할머니께서 정말 많이 편찮으신가보다.

 

그렇게 아빠 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하는데 그래도 빈손으로 가는 건 아니라고 병원 안 마트에서 음료수를 한 박스 사서 올라갔다. 할머니는 말하는 것도 힘든지 따뜻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셨다. 아빠가 가까이 다가가 손잡아드리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 나는 작게 할머니라고 말했다. 그 말에 응답하듯 할머니의 손에 힘들 들어왔다. 하지만 그 힘도 매우 작고 짧았다. 그래도 할머니의 손은 따뜻했다. 한 때는 할머니와 함께 살았는데 아침에 학교에 갈 때면 엄마 아빠 몰래 용돈을 주곤 했다. 학교생활 하다보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돈은 꼭 가지고 다녀야 한다면 돈을 쥐어주며 잘 다녀오라고 배웅해주셨는데.. 친구들이 놀러오면 엄마 아빠는 출근하셔서 할머니가 우리들을 위해 라면도 끓여 주시고 힘내라면서 고기도 구워 주셨다. 내가 갖고 싶은 책이 있으면 엄마 아빠는 그런 걸 왜보냐고 그냥 갔는데 할머니가 꼭 나중에 그 책을 사가지고 오셨다. 그리곤 엄마 아빠 몰래 내방에 들어와 책을 주셨다. 그런 나의 할머니가 많이 아프시다. 더 이상 말도 못하고 눈으로만 말하는데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전달 되는거 같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이렇게 까지 아픈신 지 몰라 더 아팠다.

 

원래는 고모네에서 할머니를 병간호 해주고 있었는데 사정이 생겨 2주정도 대신 해줄 것을 부탁했다고 한다. 엄마 아빠도 흔쾌히 답했지만 솔직히 지금 당장 일을 빠지고 오는 것이 힘들어 나에게 부탁을 했다. 학원가는 시간에는 간병인을 붙일 텐데 학원 끝나고 저녁 때 엄마가 오기 전까지만 부탁한다고. 아마 2시간정도 할머니와 함께 있어야 할 텐데 우리가 2주 정도만 고생하자고 한다. 아빠도 급한 일을 최대한 마무리하고 여유로워지면 바로 합류하겠다고 한다. 솔직히 연습 때문에 힘들 것 같다고 말하고 싶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할머니 일이라 거절이 힘들었다. 할머니가 나를 얼마나 이뻐했는데. 병간호 하고 집에 가서 피아노 소리를 작게 해서 연습하면 되지 라는 생각으로 알겠다고 답했다. 아빠가 너무 고맙다며 학원에 가는 게 너무 힘들면 잠깐 쉬자고도 말했다. 난 학원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 밴드 연습을 해야 하는데 말이다.

 

그렇게 학원이 끝나면 할머니 병간호를 해야 하는 시간이 생겼다. 내가 있을 때 크게 해야 할 일은 없지만 그래도 할머니가 몸이 불편한지 침대 위에서 뒤척일 때 나는 할머니가 움직을 수 있게 도왔다. 그리고 가만히 누워만 있으면 욕창이 생길 수 있다고 움직여 줘야 한다고 한다. 그래도 우리 할머니는 건강한 편이라고 한다. 죽만 드시지만 다른 환자들에 비하면 건강하단다. 내가 볼 때 매우 편찮으신데.. 나의 계획과는 달리 피아노 연습은 못하고 있다. 엄마, 아빠도 일 때문에 교대 오는 시간이 더 늦어지는 것도 있지만 집에 가면 9시가 되어 피아노를 조용히 친다고 해도 다른 집에 피해가 간다. 그래서 차마 피아노를 치기 그렇다 보니 테블릿에 피아노 어플을 다운 받아 연습하는 정도이다. 곡을 연습하기에는 매우 부족하여 연습하는 거 같지도 않았다. 연습을 하지 않는것 보다는 이렇게라도 해서 나 스로로에게 나름 준비를 하고 있다는 위안을 주는 정도였다. 이제 일주일 정도 밖에 남지 않았는데 걱정이다. 다른 애들도 나름 열심히 연습중인데 나 때문에 축제를 망칠 수 없는데.. 그렇다고 할머니를 혼자 두고 갈 수도 없고.. 나 혼자 진퇴양난에 빠져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고민만 하고 있다. 그저 엄마 아빠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밖에 안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