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걸음] chapter 21~22

군산시민연대
2024-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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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재훈

 

 2년 전 이진성에게 돈을 빌렸었다. 솔직히 빌려 줄거라 생각하지 못했는데 하루만에 어디서 그렇게 큰돈을 갖고 와서 나는 놀랬다. 진성이에게 너무 고마웠고 이게 진정한 친구라고 까지 생각을 했다. 그리고 돈을 갚을 필요 없다면서 일단 어머니 치료가 먼저 아니겠냐며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했다. 이때 나중에 난 진성이가 나중에 이야기 하자는 말이 그런 의도가 있는지 몰랐다. 내가 너무 순수했고 우정이라는 감정에 사로잡혀 진실을 보지 못했다.

 처음 진성이를 만난 건 중학교에 들어와 몇 주 지나고 나서였다. 같은 반은 아니었지만 내 이국적인 외모가 다른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샀고 친구도 금방 사귀게 되었다. 2교시가 끝나고 갑자기 우리반으로 진성이가 들어왔다. 그리곤 내 이름을 불렀다. “이재훈 너가 싸움 좀 한다며?” 이게 진성이와 첫 대화였다. 그렇게 점심시간에 옥상으로 올라오라는 말을 듣고 어이가 없어 난 그말을 무시하고 학교생활을 했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려고 하는데 그때 이진성 패거리가 길을 막고는 다짜고짜 옥상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옥상문은 평소 잠궈 놓는다고 들었던거 같은데 이날은 이상하게 옥상문이 열려 있었다.

옥상에서 우리는 주먹으로 이야기를 나눴고 다음날 우린 친구가 됐다. 진성이는 친했던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기가 이겼다고 말하지만 사실 내가 이겼다. 우리는 마지막까지도 그날 이야기 갖고 우려먹었다. 나이 먹어서 까지 사골처럼 우려 먹을 줄 알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엄마는 아빠가 미국으로 떠나고 혼자 일하면서 나를 키우다보니 하루도 쉬지 못하고 일만했다. 당연 아프다고 말은 안하지만 아팠을 것이다. 아직 철이 다 들지는 않았지만 그때는 더 들지 않았다. 엄마 속도 많이 썩이고 나름 엄마를 위한다고 해도 거꾸로 사고만 치게 됐다. 그래도 우리는 나름 잘 살고 있었는데 엄마가 일하다 크게 넘어져 다치게 되었다. 단순 실수로 다쳤다고 생각했는데 병문안 온 동료분께서 말하시길 직장에서 잘 못 했는데 산재처리가 안된다며 어떻게 하냐며 나누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그날 바로 엄마 직장에 가서 담당직원과 이야기를 했고 어리다는 이유로 무시하는거 같아 나도 모르게 주먹을 써서 경찰서에 가게 됐다. 법은 우리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렇게 합의금으로 300만원이 필요하게 되었고 당장 그런 돈이 나에게는 없어 진성이에게 말했더니 도와줬던 것이었다. 나는 그 직원과 합의는 했지만 엄마는 결국 직장을 잃게 되었다. 당장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보니 모아둔 돈도 많이 사용하였고 일도 쉬고 있다 보니 가장 힘든 시기를 겪게 되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고 엄마도 많이 건강해져서 일을 찾기 시작하였고 지금까지도 좋은 직장에 들어가 계속 일하고 계신다. 하지만 이제 내가 문제였다. 엄마가 많이 좋아졌다는 말에 진성이는 잘됐다면서 이제 여유가 생겼으니 그때 빌렸던 돈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고 했다. 나는 너무 고마웠고 빌린 돈이니까 갚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한 번에 다 갚을 수는 없지만 일을 시작해서 한 달에 조금씩 갚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너무 고맙다고 다시 한번 말했다. 하지만 진성이는 괜찮다면서 갚을 필요 없고 자기가 하는 일을 도와달라고 했다. 1학년 교실에 가면 자기 후배가 있는데 그 후배가 자기한테 돈을 빌려서 매달 조금씩 갚고 있으니 대신 받아서 와달라고 했다. 크게 어려운거 같지 않아 나는 수락을 했다. 하지만 내가 갚아야 할 돈과 무관하기 때문에 그 돈도 갚겠다고 말했다. 진성이도 내 고집에 지쳤는지 그럴 필요 없는데 정 그렇게 하겠다면 알겠다고 말했다. 첫 달 진성이가 말한 1학년 교실에 가서 돈을 받으려고 하는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이상하게 너무 조용하고 후배도 남학생 몇 명밖에 없었다. 두세명의 후배가 다른 학생들을 얼차렷을 시키는거 같기도 하고 괴롭히는거 같기도 한데 내가 들어가자마자 멈추곤 크게 인사를 했다. 그리곤 돈봉투를 나에게 넘겼다.

 별 의심 없이 몇 개월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교실에 갔는데 그 후배 앞에 안경 쓴 후배가 학원비라면서 정말 안된다며 그 학생들에게 맞고 있었다. 들어가 내가 뭐하는 짓이냐며 크게 호통을 쳤고 후배들은 선배 ‘왜그러시냐’며 능청스럽게 다가왔다. 그리곤 나에게 돈을 넘겼다. 나는 황당하여 돈을 집어 던졌고 후배들을 흠씬 두들겨 팼다. 이진성에게 가서 이게 뭐냐며 화를 냈고 그렇게 우리는 두 번째 옥상을 향해 갔다. 거기서 다시 한번 나의 일방적인 승리가 있었고 우리는 그렇게 틀어졌다. 그리곤 다음날부터 나는 나이를 속여 일용직을 시작하였고 진즉 원금을 다 갚았지만 이자를 내놓으라며 이진성의 괴롭힘을 받고 있다.

  그렇게 힘든 나날을 보내면서 우연히 알게된 기타로 삶을 버텨 나갔다. 저렴한 기타로 연습하다가 악기점에서 알게 된 사장님의 권유로 괜찮은 중고 기타를 싸게 구입을 했다. 그렇게 음악이라는 매일을 버틸 힘이 생겼는데 이진성이 그마저도 뺏아 갈려고 한다. 다행이 은지가 다치지 않았지만 만약 나와 더 가까워 진다면 은지도 위험해 질 것이다. 당연 승호와 예지도 포함이다. 모두 나에게 소중한 친구들이다. 힘들 때 함께 플로깅을 하면서 행복한 날을 보냈다. 승호와도 같이 게임도하고 부모님께서 만들어주신 밥도 먹으면서 이게 친구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은근 신경써주는 예지에게도 감사하고 요즘 볼 때 가슴을 띄게 만드는 은지도 소중하다. 처음에는 말을 너무 많이 걸어 거리를 두려고 했는데 어색하게 하지 않기 위해 계속 말을 걸며 노력하는 것이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모두가 소중해 지는데 이진성이 그 틈을 파고 들거 같아 두렵기도 하다. 오늘 벌써 은지가 위험에 처할 뻔 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기타를 찾기 위해 생각할 것도 있지만 소중한 친구들을 지키기 위해 포기해야 할 것도 생각이 든다. 힘들게 쌓아온 관계지만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너무 소중하니까.. 


22. 승호

 

악기를 배운다는 것이 이렇게 재밌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 처음에는 할 줄 아는 것도 별로 없어 반복적으로 매트로놈에 맞춰 연습하다 과장 조금 보태서 이제는 우리가 연습하는 곡은 눈감고도 칠 수 있다. 몇 번 실수는 하겠지만.. 그렇게 혼자서 연습은 어느 정도 마쳐가고 있다. 하지만 다같이 연습을 하기가 너무 힘들다. 그래도 은지하고 재훈이 둘은 연습을 한다는 거 같았는데 소식이 없고 예지는 할머니 병간호가 바쁜지 톡은 좀 하지만 연습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내가 연습한 것을 보내도 답장은 있어도 예지가 연습하는 것을 보내주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것만 물어보고 답하고 있다. 축제날 공연을 한다는 건지 안한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뭐 다들 한번 한다면 하는 친구들이라 하긴 하겠지만 나만 너무 열중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옛날부터 게임을 해도 바로 본게임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연습게임만 수백번하고 익숙해 졌다 싶은면 그때서야 시작을 했다. 나의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기가 싫고 못하면 내 탓이지만 잘해도 내 탓이고 싶다. 그러다보니 진입장벽이 높아 무언가 하기 위해선 오래걸리던가 시작을 못하던가 한다. 아 슬픈인생이여 뭐든 시작하기가 이렇게 어렵다니..

 

요즘은 지난번에 말한 새로운 멤버 영입건에 대해 계속 생각해본다. 이대로 연습하는 사람도 나밖에 없다면 열정있는 다른 멤버를 영입하여 연습해야 예지나 다른 애들도 그 모습을 보고 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우리는 4명 밖에 없지만) 찬성이 많으니 뽑아야지 않은가? 유일한 반대를 했던 내가 새로운 멤버 영입에 이렇게 열을 올리고 있고 나머지 3명은 조용히 있으니 이건 뭐 입장이 바껴서야 말이아니다. 그래도 찬성이 많고 다들 바쁜거 같으니 유일한 반대자 한명이 일을 해야지요. 암요 암요. 속으로 생각하면서 우리가 올렸던 유튜브 영상의 댓글을 보며 군산에 살면서 우리와 나이가 같을 듯 한 아이디 보유자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혹시 관심 있으면 베이스 영상 찍어서 메일로 보내주세요. 내부 회의 후 연락드리겠습니다. 학교, 학년, 악기 다룬 연수, 이름 연락처 까지 보내달라고 했다.

생각보다 답이 빨리 와서 놀랬다. 학교는 신기하게도 우리와 같은 학교였다. 학년은 한 학년 아래지만 뭐 그렇다는 건 이제 3학년 올라가는 거니까 나쁘지 않을 거 같고 이름과 연락처는 미안하지만 보내기가 좀 그렇다면서 한번 만나서 함께 연주 해 보고 어떻게 할지 정한다음에 알려주겠다고 답이 왔다. 뭐 그럴수 있다고 생각이 들어 이 부분은 넘어가고, 베이스는 시작한지 6개월밖에 되지 않아 못할 수도 있다고 한다. 드럼은 시작한지 3주 채 안 된걸 생각하면 베이스는 분명 고수일 것이다. “나도 이제 겨우 삼준데 나보단 잘하겠지.” 속엣말이 밖으로 자연스럽게 나와버렸다. 연주한 것을 보내줬는데 베이스는 생각했던 것보다 멋들어지진 않았다. 재훈이가 치는 기타는 화려한데 베이스는 굵직해서 정말 딩가딩가 하는거 같았다. 재훈이는 왜 베이스가 있으면 좋다고 말 한지 이해가 되지 않은 상태로 우리가 연주 한것에 편집하여 입혀봤다. 우리 연주하는 걸 틀어 놓고 베이스를 쳤는지 타이밍이 딱 좋았다. 그리고 재훈이가 베이스 베이스 말한 이유를 알게 됐다. 기타에서 부족한 마디 사이를 채워주고 있었다. 또 다른 느낌이었다. 이게 다채로운 것이구나..!

 

이제 2주정도 밖에 안 남았으니 새멤버 영입을 하려면 빨리 결정해야 한다. 그래야 같이 연습도 하여 축제 때 실수 하지 않고 연주를 한다. 단톡방에 편집한 영상을 올리고 우리 학교 한 학년 아래라고 톡방에 올렸다. 그래도 은지와 예지가 답이 빠르다. 누군지 궁금하다며 사진을 올려달라고 했다. 얼굴이 왜 궁금한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이름과 연락처도 모르는데 우짜지? 이 말을 그대로 올렸더니 그럼 내가 최종 면접을 보고 오라고 명령 하달을 했다. 시간 나는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 어쩔수 없다면서.. 예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은지는 안 바쁜거 같은데 나와 같이 가게 라고 했더니 보컬은 목 관리를 해야 한다며 원래 이럴 땐 드럼이 갔다 오는 거란다.. 드럼을 무시하는데 내가 템포 맞추느라 얼마나 고생하는데 하며 드럼비하하지 말라고 화를 냈다. 그랬더니 은지가 알겠다며 템포 좀 맞춰 면접 좀 잘 보고 오라며 우리 이야기를 종결했다. 결국 무슨 말을 하든 내가 가야 했던 것이다.

집에만 있어봤자 할 것도 없고 이왕 이렇게 된 거 놀자패에 가서 연습도 할 겸 베이스와 놀자패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러면 면접도 보고 베이스 실력도 확인 할 수 있고 나도 연습을 할 수 있으니 일석삼조의효과! 소위 개이득이다. 혹시 몰라 돈이 얼마나 있는지 확인하고 스틱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약속 시간까지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으니 가서 드럼이라도 치고 있으려고 일찍 나왔다. 버스를 타고 놀자패까지 와서 문을 열고 들어가니 몇일 안왔다고 벌써 향수가 느껴졌다. 이 얼마만에 오는 것인가? 지난주에 마지막으로 다함께 연습을 했지만 느낌은 몇 년 지난 거 같다.

 

드럼을 치면서 기다리는 그래도 시간은 금방 갔다. 그렇게 베이스 연주자가 왔는데 깜짝 놀랬다. 베이스니까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여자가 왔다. 베이스까지 등에 매고 왔는데 여기가 맞는지 서성이다가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 10분 전에 왔다고 하는데 왜 진즉 문을 안두드렸냐고 물었더니 혹시 다른데면 어떻게 하냐며 당당하게 말하길래 그건 그렇지.. 후배가 당돌하네.. 하며 속으로만 생각했다. 이번에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아 다행이다. 그렇게 새로운 베이스 멤버가 왔다. 확정은 아니지만.. 나이 16세 (만 15세), 서흥중학교, 여자, 베이스 6개월, 이름 모름, 연락처 모름. 5명이 될지 아직 모르지만 우리는 점점 다채로워지고 있다. 우리의 음악이 얼마나 어디까지 울려 퍼지게 될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