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론

군산시민연대
2022-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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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론


 2022년 6월 1일 지방선거가 여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우리(?) 지역(전라남북도, 광주광역시)은 야당의 압승으로 끝났지만 말이다. 투표란, 선택은 아무도 모르게 하지만 결과는 공개적으로 발표하는, 어떤 인물이 어떤 일에 적합한가에 대한 믿음의 정도(신뢰)를 측정하는 도구다. 후보자의 이름에 표를 하고, 수를 세어 한 명이라도 많은 표를 얻은 사람에게 나랏일을 믿고 맡기는 것이다. 우리 동네(군산)는 투표하지 않고, 신뢰를 측정하지 않고 무투표로 당선된 도의원, 시의원이 대다수다. 특정 정당의 공천을 받거나 경선을 통과하면 무조건 당선이니 선거운동은 하나 마나다. 선관위에서는 수억의 돈을 들여 선거 준비를 했지만, (이번에는 대통령선거에서의 잘못된 판단을 반복하지 않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뽑고 싶었는데) 판단하고 선택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후보자만 즐비하게 늘어선 길 가 벽보판으로 눈요기만 한 셈이다. 대낮에 소(내가 소띠다)가 웃고 갈  일이다. 무투표당선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 (후보자가 한 명이면 찬반투표로 신뢰를 측정하는 것도 한 방편이겠다.)

 

2022년 6월 15일,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각국의 뉴스 신뢰도에 대한 조사결과를 담은 <디지털 뉴스리포트 2022>를 발간했는데, 미국은 26%로 꼴찌고, 한국은 30%로 46개국 중 40위로 대부분 국민이 뉴스를 신뢰하지 않는다. 핀란드는 69%로 1위이니 대부분 국민이 뉴스를 신뢰한다. 한국 언론매체별 신뢰도는 <YTN>이 52%로 1위이고, <조선일보>가 33%로 리스트에 올라 있는 매체 15개 중 꼴찌다. 신뢰하지 않는 매체 순위에는 <TV조선>이 41%로 1위다.

-오마이뉴스 (2022.6.17)


 위대한(?) 조선이 들어가는 매체의 신뢰도가 형편없고, 중앙일보나 동아일보도 거의 같은 수준이다. 언론이 망가지면, 편파적으로 보도하게 되면, 민중이 갈리고 적폐가 판을 치게 마련이다. 명백한 사건과 사실을 다른 시각과 논리로 풀어가기 때문에 스스로 생각(가치관 혹은 주체의식)하지 않으면, 비판의식이 없으면 속아 넘어가기 일쑤다. 언론이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면 나라 안의 신뢰는 바닥에 떨어지고 민주주의는 멀다. 시민들의 눈과 귀가 막히고, 정직한 말을 하면 씨알이 안 먹히니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그럴싸하게 말 잘하는 사람이(지금은 정치인), 힘센 사람이(지금은 검찰), 돈을 많이 가진 사람(예나 지금이나 재벌)이 대장 노릇을 하게 된다.

 

 촛불로 만든 문재인 정부 때 국회를 장악했던 여당은 국민의 신뢰를 잃어 야당에 정권을 빼앗겼다. 하루아침에  야당에서 여당이 된 바로 그 여당은 2년 후인 2024년 국회의원 총선거를 얘기하며, 지방선거 압승에도 혁신을 부르짖고, 자랑스럽게(?) 제1 야당이 된 지난 여당은 참패 책임 공방에 내 책임이라는 사람은 없이 내분을 겪고 있고, 분당론이 떠돌고 있는 지경이다. 진보라 불리던 제3당은 명함도 내밀지 못하고 정치 소식에서 근황을 들을 수가 없다. 수구 보수당은 집권당이 된 후 진보의 가치인 혁신을 부르짖고, 자칭 진보성향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인 당은 보수의 가치인 안정을 서두른다. 국민의 신뢰를 잃으면 설 곳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해하지 말라. 분열된 민심 덕에 턱걸이로 당선된 대통령을 신뢰한다는 것은 아니다.)


 현 대통령의 행보는 상식을 벗어난다는 점에서는 파격이고, 생각 없이 아무 말이나 한다는 점에서는 파탄에 가깝다. 교육부장관 후보자는 타의 모범은 그만두고, 보통사람보다도 악재가 많아 국민이 반대하는데 대통령의 입에서는 교육이 산업 인재를 육성하는 공장이라는 식의 말이 터져 나온다. 본인은 검찰총장이었으니 산업 인재 출신은 아니고, 정치 경제 인재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검찰 인재 출신이 되는 셈이다. 이제는 대통령이 되었으니 지배 인재(국민을 섬기는 섬김 인재, 국민을 나라를 바른 곳으로 인도하고 행복하게 하려고 애쓰는 지도 인재가 아닌)가 되려는가. 말 잘 듣는 산업 인재들과 정치 경제 인재들의 목줄을 쥐고 있으니 꼼짝없이 그가 말하는 대로 이끄는 대로 나라가 들썩이고 허우적거릴 판이다. 나는 검찰 인재 출신인 지배 인재의 말을 신뢰할 수 없다.

 

 현 대통령은 전 정부가 5년간 추진했던 탈원전 정책은 바보짓이라며 손바닥 뒤집듯이 원전 활성화 정책을 말하고, 원전 유치경쟁에 뛰어들겠단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아직도 눈에 선한데 내가 피해를 안 입으면 그만이고 돈벌이가 되는 사업을 왜 안 하느냐 하는 꾸지람인 듯하다. 지금 대통령이 직전 대통령이 벌여온 국정 정책에 대해 아무 말 잔치를 벌이고 있는데, 그 옆에는 충언하는 사람은 없고, 아첨하는 사람만 있는 모양이다. 대통령 말 한마디면 없던 게 생기고, 있던 게 사라지는 세상으로 변해가는 판이다. 5년 동안 이것을 보아야 한다니 참 걱정이다. 집권 초기부터 삐걱거리니 어찌 신뢰할 수 있으랴. (어느 정도 예견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 상상도 못 했다. 촛불의 위대한 힘은 사그라들고, 경쟁과 자본 제일이라는 망령의 불꽃은 지글지글 타오르고 있으니 어쩌면 좋단 말인가. )

 

 왜 그랬을까?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정말 그를 신뢰하는 사람이 간발의 차로 많다는 말인가? 물어보는 사람마다 절대 안 된다고, 되면 큰일이라더니 도대체 누가 찍었단 말인가? 앞에서는 그리 말하고 뒤에서는 자신의 밥줄을 생각하는 이기심 때문인가? 우리가 촛불 들고 싸웠던 이유는 뭘까? 설마 떨어지는 떡고물 주워 먹으려 촛불 들지는 않았겠지? 사람답게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려고 그랬겠지, 안 그런가? 그런데 결과는 그렇지 않다. 그러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자신만 사람처럼 살고 싶은 사람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수를 인정하지 않았고, 그들의 힘을 과소평가했기 때문이다. 전직 대통령의 집 앞에서 고성방가를 일삼고, 꽹과리 든 자들은 촛불 든 사람들의 수를 파악하면서 전열을 가다듬고, 자신들의 수를 어떻게든 확장하고 집요하게 갖은 수단을 다하며 맞서는데 어찌 이길 수 있겠는가?

 

"우리가 정말로 정직하다면 반대편의 주장도 수긍할 수 있어야 한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노암촘스키/강주헌/시대의창/2008

 

그들 또한 표현의 자유가 있으니 인정하라고 노암촘스키는 말한다. (나는 그들의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지만 그들의 몰염치와 불의를 인정하지는 않는다.) 같은 생각을 가졌다고 믿는 우리(내가 신뢰하는 사람들을 포함하여)는 정말 정직한가? 그들을 욕하고, 그들에게 분노하는 나는 오로지 민중의 자유와 해방만을 원하고 이기심 없이 한 점 부끄럼 없이 정직한가? 정말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이 진실입니다. 진실한 말은 꾸밀 필요가 없습니다. 꾸민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결국, 현실을 사실대로 설명할 때 우리가 모두 진실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습니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노암촘스키/강주헌/시대의창/2008

 

 그렇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고 설명할 때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고, 신뢰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사실을 삐뚤어지게 보거나 가리거나 감성에 호소하여 본질을 흐리는 것은 꾸미는 것이다. 꾸미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꾸밈으로 감성을 건드려 사실을 가리지 말라는 것이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고, 거짓은 진실을 이길 수 없다. 정직해야 신뢰할 수 있고, 함께 대동 세상의 길을 갈 수 있다.

 

 서로 신뢰를 쌓을 수 있는 길은 스스럼없이 잘잘못을 인정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사실로 드러난 사건에 대해서는 내가 그랬노라고 정직하게 인정하면 된다. 그러면 그 사건에 대한 유무죄를 떠나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신뢰가 싹트게 된다. 작을 때 얼른 돌이켜서 분란의 여지를 없애거나, 시인해서 책임을 져야 후환이 없는 것이다. 작은 것을 인정하고, 죄를 달게받으면 신뢰가 쌓여 큰 것에도 어렵게라도 넘어갈 길이 열리는 이치다. 적어도 명백한 사실을 모른다거나 은폐하거나 축소하는 부끄러운 짓은 하지 않기 때문에 죄 갚음이 끝나면 떳떳하게 다른 일에 나설 수 있다. 한때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잘못을 또다시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반성하고 실천하려 애쓰는 것이야말로 신뢰로 가는 지름길이다. 내가 누구에게 말하고 있겠는가? 바로 나다.


강태호(참여자치군산시민연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