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효율성 : 들인 대가나 노력에 비하여 훌륭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기능이나 성질
효과성 : 어떤 목적을 지닌 행위를 했을 때 드러나는 보람이나 좋은 결과가 나타나는 것
6.3 지방 선거와 국회의원 보궐 선거 유감
민주당 약진이 아니라, 계엄 세력을 옹호하는 국민의힘을 민심이 심판하려 애쓴 날이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전국 곳곳에서 민주당이 기승을 부리고, 당선사례와 박수 소리가 요란했지만, 대구는 비상계엄 세력에 동조하고 협력한 후보가 당선되었고, 경북은 윤대통령과 단절하면 당에서 몰아내야 한다며 계엄을 옹호한 후보에게 손도 못 쓰고, 최대 격전지 서울에서는 전세가 엎치락뒤치락하며 요동을 쳤지만 결국 계엄 옹호 세력인 국민의힘 후보에게 역전패를 당했다. (민주당은 이재명 대통령의 인기를 등에 업고 전국을 휩쓰는 전략이 효과는 좋았지만, 인구가 많은 대구 경북과 서울에서는 졌으니, 효율적인 면에서는 참패라 볼 수 있다. 이 세 곳의 인구 2천만 명에 육박하니 말이다.)
군산시장 경선에서 탈락한 사람이 시의원 후보로 공천 받아 당선되는 경우도 있고, 선거법 위반으로 당에서 제명된 후보가 도지사 선거에 버젓이 나오는 이상한 광경도 있고, 윤어게인을 외치던 사람도 당선이 되고, 경선에서 떨어지자 당을 바꾸어 달고 재도전하여 당선된 사람도 있고, 툭하면 경선 결과에 불복하고 탈당했다가 당선되면 돌아오겠다는 사람도 있고, 투표용지가 모자라 옆집에서 꿔 오는 동안 투표가 중단되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선관위가 사과했지만 사과로 끝날 일인가? 지난번 투표율을 참고하여 버려지는 투표용지가 아까워-효율성을 따져- 이번 투표율을 예상하고, 그만큼만 투표용지를 배부-효과성을 높이기 위해-했다고 하니 말이 되는가. 시민의 권리가 훼손됐는데 말이다. 분노한 시민들의 개표소 봉쇄 시위도 계속되고 있다.) 선관위원장이 사퇴하는 것으로 매듭을 지으려 하지만, 여론이 들끓어 국정조사는 피할 수 없을 듯하다.
한술 더 떠, 전북 경기 교육감 선거는 개표 오류가 발생했다. 후보 간에 당락이 뒤바뀔 수 있는 중대 오류를 "당락에 영향 없다." 하면 끝나는 것인가? 과정이 어떻든 결과가 좋으면 그만이고, 결과가 잘못되었더라도 예상이 잘못되었고, 실수였다고 변명하면 그만인가. 선거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어떻게 씻어야 할지 막막하다. 국민이 직접 칼자루를 쥐고, 나라를 위해 동네를 위해 일할 지도자를 뽑는 유일한 기회인 선거가 엉망이면 누가 나라를 믿고 따르겠는가?
비용을 아낀다고는 하지만 민주주의 꽃이라고 주구장창 입으로는 선전하면서, 지방의회선거 한 번 선거에 7~8장의 투표용지를 배부하고, 국회의원 보궐선거까지 실시하도록 하는 것은 웬일인가? 우리 국민은 문맹률이 낮고, 문해력도 좋아서, 색깔별로 나누기만 하면, 누구나 알아보고 쉽게 투표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인가? 누구를 위한 효율성인가? 시민인가 아니면 선거관리위원회를 위한 것인가? 효율성을 극대화하려 이렇게 했겠지만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났고, 개표 오류라는 혼란이 가중되고 있으니 효과성은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나 부터도 후보들의 이름을 기억하여 찍어야 했는데, 너무 많아 헛갈려서 실수할 뻔했다. 아니 사실 내 기억력에 한계가 있어, 어느 후보에게 찍었는지 실수하고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철저한 진상규명을 통해 책임자는 책임지고, 바른 선거 관리와 선거 문화를 정착해야 할 것이다.
효율성과 효과성 들여다보기
효율성은 ‘빨리 빨리’를 외치고, 경쟁 심리를 부추기며 성장을 재촉하는, 효과성은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만을 쫒는 근대 산업의 산물이다.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작업 시설을 기계화하여, 컨베이어 벨트를 만들고, 화장실에 갈 틈도 주지 않고, 할당된 시간에 볼트를 조이도록 채근한다.(찰리 채플린이 1936년에 만든 무성영화 “모던타임스”를 보면 웃지만은 못할 것이다. 지금이라고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오히려 무시무시한 인공지능이 촘촘히 감시하며, 모든 것을 바꾸어 놓으려 하고 있지 않은가) 하나라도 놓치면 공정이 지연되기 때문에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생산성은 올라갈지 모르지만, 긴장감과 스트레스로 노동자의 생명 줄은 짧아져만 간다. 기업은 하루 생산량을 뽑아내면 그만 이기 때문에 노동자의 건강은 뒷전이다. 노동자는 살기 위해 한데 뭉쳐서 본인의 생명을 보상 받기 위한 임금 인상 협상 투쟁에 돌입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효율성은 어느 정도 임금 인상을 해도 기업에게는 좋지만, 노동자에게는 좋지 만은 않으니 건강이 조금씩 나빠지기 때문이다.(어느 시점에 힘이 달리면 피땀 흘려 모은 돈을 써보지도 못하고, 병원이라는 기업에 바쳐야 할 지 모른다.) 효율성을 너무 따지면, 인간성이 메마른다.
운동을 통해 체중을 조절하려는 사람은 끈기가 있어야 한다. 당장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바라는 목표까지 너무 오래 걸린다고, 운동을 중단해 버리면 실패하기 때문이다. 한 번 만 더 파면 금맥이 터지는데 참지 못하고, 직전에 멈추면 그동안의 노력은 허사다. 효과성을 따진다면 약을 먹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약도 어느 정도 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약을 끊은 후에는 요요현상이 있을 수 있으니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체념하거나 포기해야 할 사안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은 효과가 더디 나타나니 인내할지어다.)
사실 과학이 발전한 이유는 역설적으로 효율적이지 않고, 효과성이 천천히 나타났기 때문이다. 적게는 수십 번 많게는 수만 번을 반복해서 실험해야 발명(에디슨은 전구를 발명하기 위하여 몇 날 며칠 비용을 들이며 수 만 번을 실패했다.)하거나, 어떤 법칙을 발견할 수 있다. 비용이 많아드니 비효율적이면서, 시간도 많이 들어 비효과적이다. 한 두 번 하면 결과가 딱 나와야하는데 말이다. 그런데도 과학은 끈질기게 붙잡고 늘어진다. 세상에 유용한 도구를 발명하거나 삶의 유익한 법칙을 발견하면, 그 효율성(대량생산 가능)과 효과성(삶에 유용한)은 그 전의 실패 비용을 감당하고도 남음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과학은 도구와 법칙을 의심하고, 새롭게 바라보며, 새롭게 바꾸기 위해 비효율성을 택한다.
디지털(계산적, 효율적)과 아날로그 (감성적, 낭만적)
디지털은 계산적이고, 효율성을 따진다. 빠른 시간 안에 큰 성과를 가져오기 위해, 오로지 데이터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배치할 것인가에만 신경을 쓴다. 예전에는 사람이 데이터를 정리하고, 결과를 뽑아내는 수고를 하고, 책임을 졌다면, 지금은 인공지능이 알아서 다 해 주어서 편리해 졌지만, 인공지능은 그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고, 제공만 할 뿐이다. 데이터를 선하게 사용할 것인가, 악하게 사용할 것인가에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열심히 계산하고, 분류하고, 최적의 지점을 찾아가는 것이다. 빠르고, 정확하지만 책임을 지지 않으니 믿을 수 없다. 아날로그는 감성적이고, 몸으로 맘으로 직접 작업을 수행하며, 과정을 중시한다. 느리더라도 그 과정에서 기쁨을 만끽한다. 결정적인 것은 아날로그인 손이 버튼을 누를 때 디지털인 컴퓨터, 인공지능 AI가 작동한다는 것이다. 주체인 아날로그가 도구인 디지털을 필요에 따라, 쓸모에 맞게 부리는 것이다. 사람은 계산적으로 딱딱 맞추어 살 때 보다, 약간은 낭만적으로 살 때 더 자유롭고, 행복해진다.(그렇다고 기분 내키는 대로 살라는 말은 아니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좋지 않다.)
탁구를 예로 들어 본다. 탁구는 참 비효율적이고 비효과적이다. 다른 운동은 조금만 배우면 실력이 늘고 나름대로 즐거움을 느낀다는 데, 공을 제대로 넘기는 데만 3개월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제대로 맞추지 못하면 더 긴 시간을 각오해야 한다. 배우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코치가 빨리 노하우를 알려주어 탁구를 칠 수 있게 해주면 좋으련만 야속하게 코치는 비효율적으로 탁구공만 치라고 한다. (탁구 기술과 실력이 느는 노하우를 알려주어도 기본기가 몸에 익어 있지 않으면 몸에 익힐 수도, 실전에서 사용할 수 없다.)보람도 없고, 성과도 없으니 재미는 고사하고, 운동을 통해 얻는 스트레스 해소라는 효과는 생각도 못한다. 이 시기를 못 견디면 탁구를 포기하게 된다. 그러나 이 비효율적인 동작을 몸에 익히기만 하면, 그 후부터는 본인이 레슨을 제대로 받고, 레슨 받은 대로 몸에 익히는, 개인적인 연습 시간에 비례하여 실력이 늘게 된다. 어느 정도 시간이 되어 제대로 공을 치며,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느낌을 받을 때 오는 즐거움은 말로 다할 수 없고, 점점 실력이 늘면, 나비처럼 자유롭게 날아 벌처럼 쏘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처음에는 비효율적이고 더디 효과가 나지만 끈기를 가지고, 연습해나가면 실력이 쌓인다. 실력이 쌓이면 비효율적으로 느껴졌던 시간이, 좋은 추억으로 남고, 공을 칠 때마다 스트레스 해소가 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게 되는 것이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단 한 명의 인간이 지구상에 남아 있더라도, 들과 산과 강이 필요하겠다.) 짐승들은 태어나면 바로 걷고, 부모의 도움을 받아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 조금 지나면 장성하여 본인의 삶을 살아가는데, 인간은 그렇지 못하다. 태어나면서부터 백일이 될 때까지는, 부모의 지극 정성으로 보살핌을 받아야 하고, 일 년이 되어야 겨우 설 수 있고, 학교 교육을 받기 전까지 놀이방에 유치원에, 그리고 수십 년에 걸친 학교 교육을 통해야(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장성한 사람으로 자랄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니 말이다. 자본의 논리로 보면, 비용이 많이 들어 비효율적이라 할 수 있지만 인간이 사람이 되는 데 꼭 필요한 일이므로 감수해야 한다. 집안을 밝히는 데 전등이 있으니, 촛불은 비효율적이라고 내다 버리면, 전기가 나갔을 때 우왕좌왕하게 되듯이 항상 효율적인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효율적인 것이 인간성을 억압하기도 한다. 기업들은 광고 대비 수익 효율성을 따지고, 노동 현장을 보아도 안전보다는 생산 효율성을 따지고, 배달 앱부터 시작하여 모든 물류시스템은 적은 비용으로 큰 성과를 올리려는 편리 효율성 하나 때문에 많은 종사자들이 다치고 죽어 나간다.
효율과 효과를 너무 따지지 말고, 필요에 따라 해야 할 일이라면,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면 사람을 사람답게 살게 하는 일이라면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해야 한다. 다시 원전 건설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엄청난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원전이 다른 시설보다 효율적이라 해도, 실수 한 방에 걷잡을 수 없는 커다란 재앙이 감지된다면 더 깊이 고민하고, 빠른 시일 내에 멈추어야한다. 지금은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 등이 투자대비 생산량이 적어 비효율적이지만, 한 사람을 태우기 위해 마을버스가 산골 마을로 가고,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사회가 협력하는 것이 비효율적으로 비치지만, 결국은 인간을 살릴 길이지 않은가. 시 한 토막.
효율성과 효과성과 기적
인간의 머리로는 상상할 수 없는 무한대 시간과 크기의 우주 속에 한 점으로 빛나는 창백한 지구에 생명체가 살고 있다는 것은 우주가 보기에는 비효율적이지만 기적이다. 과학은 긴 시간을 통해, 아니 지금 이 시간도 우주라는 맨 땅에 머리를 찧는 마음으로, 비효율적이고 비효과적인 관찰과 가설과 실험을 통해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법칙과 도구를 애써 만들어 내는 수고를 해주어 고맙지만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는 잘 몰라도 내가 타인과 더불어 그럭저럭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기적이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효율적이지도 효과적이지도 않지만 대지를 적신다. 때로 나에게 가족에게 사회에 나라에 세계에 닥친 재앙 때문에 원망하는 일도 발생하지만 우주의 나이를 생각하면 크기를 생각하면 어쩌다 한 번 찰나의 작은 순간일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운 좋게 살아남아 지구라는 터전 위에서 생명을 이어가니 기적이다.
혼돈이라는 질서 속에서 효율적이지도 효과적이지도 않게 우연히 발생한 생명체가 존재하게 되어,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을 통해, 침팬지의 사슬을 끊어내며,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으로, 뇌가 커진 인간으로, 진화를 했다는 것을 믿든, 신이 흙으로, 자신의 형상을 닮게 빚고, 생기를 불어 넣어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믿든,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것은 기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세우는 발전을 향한 혹은 진화를 향한 효율성과 효과성이라는 위대함도, 보잘 것 없지만, “내가 -지금 -여기 -있음”이라는 기적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강태호(참여자치군산시민연대 대표)
효율성 : 들인 대가나 노력에 비하여 훌륭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기능이나 성질
효과성 : 어떤 목적을 지닌 행위를 했을 때 드러나는 보람이나 좋은 결과가 나타나는 것
6.3 지방 선거와 국회의원 보궐 선거 유감
민주당 약진이 아니라, 계엄 세력을 옹호하는 국민의힘을 민심이 심판하려 애쓴 날이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전국 곳곳에서 민주당이 기승을 부리고, 당선사례와 박수 소리가 요란했지만, 대구는 비상계엄 세력에 동조하고 협력한 후보가 당선되었고, 경북은 윤대통령과 단절하면 당에서 몰아내야 한다며 계엄을 옹호한 후보에게 손도 못 쓰고, 최대 격전지 서울에서는 전세가 엎치락뒤치락하며 요동을 쳤지만 결국 계엄 옹호 세력인 국민의힘 후보에게 역전패를 당했다. (민주당은 이재명 대통령의 인기를 등에 업고 전국을 휩쓰는 전략이 효과는 좋았지만, 인구가 많은 대구 경북과 서울에서는 졌으니, 효율적인 면에서는 참패라 볼 수 있다. 이 세 곳의 인구 2천만 명에 육박하니 말이다.)
군산시장 경선에서 탈락한 사람이 시의원 후보로 공천 받아 당선되는 경우도 있고, 선거법 위반으로 당에서 제명된 후보가 도지사 선거에 버젓이 나오는 이상한 광경도 있고, 윤어게인을 외치던 사람도 당선이 되고, 경선에서 떨어지자 당을 바꾸어 달고 재도전하여 당선된 사람도 있고, 툭하면 경선 결과에 불복하고 탈당했다가 당선되면 돌아오겠다는 사람도 있고, 투표용지가 모자라 옆집에서 꿔 오는 동안 투표가 중단되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선관위가 사과했지만 사과로 끝날 일인가? 지난번 투표율을 참고하여 버려지는 투표용지가 아까워-효율성을 따져- 이번 투표율을 예상하고, 그만큼만 투표용지를 배부-효과성을 높이기 위해-했다고 하니 말이 되는가. 시민의 권리가 훼손됐는데 말이다. 분노한 시민들의 개표소 봉쇄 시위도 계속되고 있다.) 선관위원장이 사퇴하는 것으로 매듭을 지으려 하지만, 여론이 들끓어 국정조사는 피할 수 없을 듯하다.
한술 더 떠, 전북 경기 교육감 선거는 개표 오류가 발생했다. 후보 간에 당락이 뒤바뀔 수 있는 중대 오류를 "당락에 영향 없다." 하면 끝나는 것인가? 과정이 어떻든 결과가 좋으면 그만이고, 결과가 잘못되었더라도 예상이 잘못되었고, 실수였다고 변명하면 그만인가. 선거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어떻게 씻어야 할지 막막하다. 국민이 직접 칼자루를 쥐고, 나라를 위해 동네를 위해 일할 지도자를 뽑는 유일한 기회인 선거가 엉망이면 누가 나라를 믿고 따르겠는가?
비용을 아낀다고는 하지만 민주주의 꽃이라고 주구장창 입으로는 선전하면서, 지방의회선거 한 번 선거에 7~8장의 투표용지를 배부하고, 국회의원 보궐선거까지 실시하도록 하는 것은 웬일인가? 우리 국민은 문맹률이 낮고, 문해력도 좋아서, 색깔별로 나누기만 하면, 누구나 알아보고 쉽게 투표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인가? 누구를 위한 효율성인가? 시민인가 아니면 선거관리위원회를 위한 것인가? 효율성을 극대화하려 이렇게 했겠지만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났고, 개표 오류라는 혼란이 가중되고 있으니 효과성은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나 부터도 후보들의 이름을 기억하여 찍어야 했는데, 너무 많아 헛갈려서 실수할 뻔했다. 아니 사실 내 기억력에 한계가 있어, 어느 후보에게 찍었는지 실수하고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철저한 진상규명을 통해 책임자는 책임지고, 바른 선거 관리와 선거 문화를 정착해야 할 것이다.
효율성과 효과성 들여다보기
효율성은 ‘빨리 빨리’를 외치고, 경쟁 심리를 부추기며 성장을 재촉하는, 효과성은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만을 쫒는 근대 산업의 산물이다.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작업 시설을 기계화하여, 컨베이어 벨트를 만들고, 화장실에 갈 틈도 주지 않고, 할당된 시간에 볼트를 조이도록 채근한다.(찰리 채플린이 1936년에 만든 무성영화 “모던타임스”를 보면 웃지만은 못할 것이다. 지금이라고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오히려 무시무시한 인공지능이 촘촘히 감시하며, 모든 것을 바꾸어 놓으려 하고 있지 않은가) 하나라도 놓치면 공정이 지연되기 때문에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생산성은 올라갈지 모르지만, 긴장감과 스트레스로 노동자의 생명 줄은 짧아져만 간다. 기업은 하루 생산량을 뽑아내면 그만 이기 때문에 노동자의 건강은 뒷전이다. 노동자는 살기 위해 한데 뭉쳐서 본인의 생명을 보상 받기 위한 임금 인상 협상 투쟁에 돌입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효율성은 어느 정도 임금 인상을 해도 기업에게는 좋지만, 노동자에게는 좋지 만은 않으니 건강이 조금씩 나빠지기 때문이다.(어느 시점에 힘이 달리면 피땀 흘려 모은 돈을 써보지도 못하고, 병원이라는 기업에 바쳐야 할 지 모른다.) 효율성을 너무 따지면, 인간성이 메마른다.
운동을 통해 체중을 조절하려는 사람은 끈기가 있어야 한다. 당장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바라는 목표까지 너무 오래 걸린다고, 운동을 중단해 버리면 실패하기 때문이다. 한 번 만 더 파면 금맥이 터지는데 참지 못하고, 직전에 멈추면 그동안의 노력은 허사다. 효과성을 따진다면 약을 먹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약도 어느 정도 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약을 끊은 후에는 요요현상이 있을 수 있으니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체념하거나 포기해야 할 사안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은 효과가 더디 나타나니 인내할지어다.)
사실 과학이 발전한 이유는 역설적으로 효율적이지 않고, 효과성이 천천히 나타났기 때문이다. 적게는 수십 번 많게는 수만 번을 반복해서 실험해야 발명(에디슨은 전구를 발명하기 위하여 몇 날 며칠 비용을 들이며 수 만 번을 실패했다.)하거나, 어떤 법칙을 발견할 수 있다. 비용이 많아드니 비효율적이면서, 시간도 많이 들어 비효과적이다. 한 두 번 하면 결과가 딱 나와야하는데 말이다. 그런데도 과학은 끈질기게 붙잡고 늘어진다. 세상에 유용한 도구를 발명하거나 삶의 유익한 법칙을 발견하면, 그 효율성(대량생산 가능)과 효과성(삶에 유용한)은 그 전의 실패 비용을 감당하고도 남음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과학은 도구와 법칙을 의심하고, 새롭게 바라보며, 새롭게 바꾸기 위해 비효율성을 택한다.
디지털(계산적, 효율적)과 아날로그 (감성적, 낭만적)
디지털은 계산적이고, 효율성을 따진다. 빠른 시간 안에 큰 성과를 가져오기 위해, 오로지 데이터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배치할 것인가에만 신경을 쓴다. 예전에는 사람이 데이터를 정리하고, 결과를 뽑아내는 수고를 하고, 책임을 졌다면, 지금은 인공지능이 알아서 다 해 주어서 편리해 졌지만, 인공지능은 그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고, 제공만 할 뿐이다. 데이터를 선하게 사용할 것인가, 악하게 사용할 것인가에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열심히 계산하고, 분류하고, 최적의 지점을 찾아가는 것이다. 빠르고, 정확하지만 책임을 지지 않으니 믿을 수 없다. 아날로그는 감성적이고, 몸으로 맘으로 직접 작업을 수행하며, 과정을 중시한다. 느리더라도 그 과정에서 기쁨을 만끽한다. 결정적인 것은 아날로그인 손이 버튼을 누를 때 디지털인 컴퓨터, 인공지능 AI가 작동한다는 것이다. 주체인 아날로그가 도구인 디지털을 필요에 따라, 쓸모에 맞게 부리는 것이다. 사람은 계산적으로 딱딱 맞추어 살 때 보다, 약간은 낭만적으로 살 때 더 자유롭고, 행복해진다.(그렇다고 기분 내키는 대로 살라는 말은 아니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좋지 않다.)
탁구를 예로 들어 본다. 탁구는 참 비효율적이고 비효과적이다. 다른 운동은 조금만 배우면 실력이 늘고 나름대로 즐거움을 느낀다는 데, 공을 제대로 넘기는 데만 3개월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제대로 맞추지 못하면 더 긴 시간을 각오해야 한다. 배우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코치가 빨리 노하우를 알려주어 탁구를 칠 수 있게 해주면 좋으련만 야속하게 코치는 비효율적으로 탁구공만 치라고 한다. (탁구 기술과 실력이 느는 노하우를 알려주어도 기본기가 몸에 익어 있지 않으면 몸에 익힐 수도, 실전에서 사용할 수 없다.)보람도 없고, 성과도 없으니 재미는 고사하고, 운동을 통해 얻는 스트레스 해소라는 효과는 생각도 못한다. 이 시기를 못 견디면 탁구를 포기하게 된다. 그러나 이 비효율적인 동작을 몸에 익히기만 하면, 그 후부터는 본인이 레슨을 제대로 받고, 레슨 받은 대로 몸에 익히는, 개인적인 연습 시간에 비례하여 실력이 늘게 된다. 어느 정도 시간이 되어 제대로 공을 치며,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느낌을 받을 때 오는 즐거움은 말로 다할 수 없고, 점점 실력이 늘면, 나비처럼 자유롭게 날아 벌처럼 쏘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처음에는 비효율적이고 더디 효과가 나지만 끈기를 가지고, 연습해나가면 실력이 쌓인다. 실력이 쌓이면 비효율적으로 느껴졌던 시간이, 좋은 추억으로 남고, 공을 칠 때마다 스트레스 해소가 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게 되는 것이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단 한 명의 인간이 지구상에 남아 있더라도, 들과 산과 강이 필요하겠다.) 짐승들은 태어나면 바로 걷고, 부모의 도움을 받아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 조금 지나면 장성하여 본인의 삶을 살아가는데, 인간은 그렇지 못하다. 태어나면서부터 백일이 될 때까지는, 부모의 지극 정성으로 보살핌을 받아야 하고, 일 년이 되어야 겨우 설 수 있고, 학교 교육을 받기 전까지 놀이방에 유치원에, 그리고 수십 년에 걸친 학교 교육을 통해야(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장성한 사람으로 자랄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니 말이다. 자본의 논리로 보면, 비용이 많이 들어 비효율적이라 할 수 있지만 인간이 사람이 되는 데 꼭 필요한 일이므로 감수해야 한다. 집안을 밝히는 데 전등이 있으니, 촛불은 비효율적이라고 내다 버리면, 전기가 나갔을 때 우왕좌왕하게 되듯이 항상 효율적인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효율적인 것이 인간성을 억압하기도 한다. 기업들은 광고 대비 수익 효율성을 따지고, 노동 현장을 보아도 안전보다는 생산 효율성을 따지고, 배달 앱부터 시작하여 모든 물류시스템은 적은 비용으로 큰 성과를 올리려는 편리 효율성 하나 때문에 많은 종사자들이 다치고 죽어 나간다.
효율과 효과를 너무 따지지 말고, 필요에 따라 해야 할 일이라면,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면 사람을 사람답게 살게 하는 일이라면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해야 한다. 다시 원전 건설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엄청난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원전이 다른 시설보다 효율적이라 해도, 실수 한 방에 걷잡을 수 없는 커다란 재앙이 감지된다면 더 깊이 고민하고, 빠른 시일 내에 멈추어야한다. 지금은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 등이 투자대비 생산량이 적어 비효율적이지만, 한 사람을 태우기 위해 마을버스가 산골 마을로 가고,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사회가 협력하는 것이 비효율적으로 비치지만, 결국은 인간을 살릴 길이지 않은가. 시 한 토막.
효율성과 효과성과 기적
인간의 머리로는 상상할 수 없는 무한대 시간과 크기의 우주 속에 한 점으로 빛나는 창백한 지구에 생명체가 살고 있다는 것은 우주가 보기에는 비효율적이지만 기적이다. 과학은 긴 시간을 통해, 아니 지금 이 시간도 우주라는 맨 땅에 머리를 찧는 마음으로, 비효율적이고 비효과적인 관찰과 가설과 실험을 통해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법칙과 도구를 애써 만들어 내는 수고를 해주어 고맙지만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는 잘 몰라도 내가 타인과 더불어 그럭저럭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기적이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효율적이지도 효과적이지도 않지만 대지를 적신다. 때로 나에게 가족에게 사회에 나라에 세계에 닥친 재앙 때문에 원망하는 일도 발생하지만 우주의 나이를 생각하면 크기를 생각하면 어쩌다 한 번 찰나의 작은 순간일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운 좋게 살아남아 지구라는 터전 위에서 생명을 이어가니 기적이다.
혼돈이라는 질서 속에서 효율적이지도 효과적이지도 않게 우연히 발생한 생명체가 존재하게 되어,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을 통해, 침팬지의 사슬을 끊어내며,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으로, 뇌가 커진 인간으로, 진화를 했다는 것을 믿든, 신이 흙으로, 자신의 형상을 닮게 빚고, 생기를 불어 넣어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믿든,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것은 기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세우는 발전을 향한 혹은 진화를 향한 효율성과 효과성이라는 위대함도, 보잘 것 없지만, “내가 -지금 -여기 -있음”이라는 기적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강태호(참여자치군산시민연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