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한 번뿐인 인생

군산시민연대
2021-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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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존재 자체로 소중하고 귀하고 존중받아야 하고 평등하다고 말한다. 귀하고도 중하다. 하지만 평등하지는 않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평등하지 않다. 태어나는 부모와 환경을 태어나는 자가 결정할 수 없고, 생명은 가졌으되 주위환경의 보살핌 정도의 차이가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로 구별되어 태어난다. 가진 자들은 가지지 못한 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게을러서 그렇다고, 노력이 모자라서 그렇다고, 노력해서 안 될 것이 어디 있느냐고.” 그러면서 보편적 복지를 반대한다.(초중학교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누구나 밥을 굶지 않을 권리를 위한 보편복지에 대한 -주민투표 결과 서울시장직에서 물러난 사람이 전 시장의 죽음으로 공석이 되자 보궐선거를 통해 다시 돌아왔다. 정말 인간은 망각하는 동물일까?)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밑천을 가지고 있다. 무엇을 시작하더라도 힘이 될 자본금이 두둑하다는 말이다. 가진 것이라고는 몸뚱어리밖에 없어서 내 밑천인 노동을 사용하여 임금을 받아 살아가는 나로서는 로또를 맞지 않는 이상, 하늘에서 돈벼락이 떨어지지 않는 이상 말이다. 나는 사회에서 통상적으로 말하는 돈 많고, 집 크고, 차 좋은 부자가 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부자는 아니지만 부유한 사람이라 생각하며 살아간다. 한가한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지금 살아있고, 기적처럼 아내와 딸이 있고, 읽을 책과 만날 친구와 동지들이 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자본과 시장이 생명인지라 자본이 없으면, 경쟁력이 없으면 발도 못 붙인다. 인간의 역사는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의 과정이다. 봉건주의를 몰아내고, 왕정을 끌어내렸다. 자유로워서 좋을 줄 알았는데 그 자유를 통해 얻은 돈으로 인간을 억압하고, 노예로 부리는 참혹한 현실이 빚어지고 있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며 그렇게 싸워왔건만 막상 자유가 주어지니 방종을 넘어서 탐욕에 눈이 멀게 되어 사람들이 정신을 잃어가고 있다. 내가 지금 그 자유로 누구를 짓밟고 있는지, 죽이고 있는지를 모르고 살고 있다. 그저 평범하게(?) 살던 사람들이 벌이는- 뉴스를 틀면 맨 폭력과 살인이다.

 

 아동학대가 극에 달했다. CCTV로 촬영을 하는데도 버젓이 그 앞에서 아이들에게 밥을 억지로 먹이고, 벌 세우고, 질질 끌고 사정없이 때린다. 앞에 있는 차가 늦게 간다고 보복운전을 하고, 차를 부수고, 도로 한복판에 차를 세우고 내려서 상대방을 때린다. 지나가는 사람이 자신을 쳐다보았다고 죽이고, 위층에서 시끄럽게 한다고 칼로 찌르는, 사람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기막힌 사건이 낮과 밤 가리지 않고 장소를 가리지 않고 벌어지고 있다. 뒤도 안 보고, 책임도 없고, 그저 앞에 벌어지는 상황에만 왈칵 반응하는 유아적이고 몰상식한 행위를 일삼고 있으니 이것을 어쩌란 말인가?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는가? 깊이 성찰하지 않으면, 원인을 규명하고 치유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인간의 미래는 없지 싶다. 수명을 200년으로 늘리고, 우주를 개척하고, 알약으로 배를 채우고, 손 안 대고 코를 풀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될지라도 그 바탕을 흐르는 삶의 철학이 인간존중이 아닌 물신숭배라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세계를 이끈다는 위대(위가 커서 먹을 것도 많은)한 나라 미국은 코로나가 창궐하고 있고, 백신주사를 구입할 경제력도 없는, 제3 세계 국가의 사람들은 나 몰라라 하고, 자국의 국민에게 코로나 백신을 집중적으로 주사하는 이기심의 극치를 보여주며 국제적으로 언론의 뭇매를 맞는다. 중국은 그들에게 백신을 전달하는 시늉을 하니 그나마 다행이기는 하다. 미국이 어디서부터 부자가 되었을까. 골드러쉬 때문일까. 아니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에 도착하여 그곳에 터를 잡고 살아온 원주민을 몰아내고 문명을 개척하고 발전시킨 탓일까. 모든 나라에 내정간섭을 하고, 끈질기게 식민지를 개척하고, 전쟁을 일으켜 무기를 팔아온 탓일까. 어쨌거나 지금 바스러진 미국의 민낯을 보니 가엾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이 지금 여기에서 돌이키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지구상에서 돈으로는 가장 부자이지만, 인간적으로는 가장 비참한 나라로전락할 것이다. 역사를 잊은 나라에게 미래가 없듯 인간에 대한 예의를 잃어버린 나라의 미래도 없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가진 자나 못 가진 자나 한번은 죽는다는 평등이다. 부자로 살았던 가난한 자로 살았던 죽음 앞에서는 장사가 없다. 저승사자가 부르면 가야 한다. 부와 가난이라는 말을 빼보자. 사람만이 남았다. 사람은 무(無)에서 시작하여 삶에 이르고, 삶을 누리다가 죽음에 이르고, 저승에 머물다 그다음은 무로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가족들과 ”코코“라는 만화영화를 보았다. 사후세계의 모습을 그렸는데 참으로 마음이 뭉클하였다. 사람이 죽으면 저승이라는 곳으로 간다. 그곳도 이승과 마찬가지로 사는데 해골의 모습을 하고 있을 뿐이다. 주인공은 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기 좋아하는 소년이다. 우연히 죽은 자의 기타를 만지다 살아있는 몸으로 저승에 가게 되며 겪는 이야기를 그렸다.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죽은 사람의 사진을 걸어놓고 기억하면서 기일이 되면 죽은 자가 사진이 있는 곳으로 방문한다는 풍습을 배경으로 깔고 있다. 여기까지는 그저 그랬다. 하지만 마지막 메시지는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이승에 살아있는 사람이 죽은 자를 기억하면 저승에서 존재할 수 있지만, 이승에서 기억하는 사람이 없으면 저승에서도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저승에서 어디로 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정말 아무것도 없는, 존재한 적이 없는 근원의 무로 돌아가는 것은 아닌지)

 

 역사를 기록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왕조역사와 승리한 자들의 공적을 적어 놓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역사 속에 녹아들은 민초들의 마음과 마음이 이어져 있는 이야기들을 적어 놓는 것이다. 물론 왕조역사 속에서도 민초들의 생활상을 읽을 수 있고, 민초들의 이야기 속에서도 훌륭하고 멋진 왕들의 활약상을 읽을 수 있겠다. 내가 김구와 윤봉길을 기억하는 마지막 사람이라면 그들의 투철한 애국충정과 자유를 향한 몸짓은 묻힐 것이다. 갑오농민혁명의 깃발을, 3.1의 함성을, 4.19의 혁명을, 5.18 민중항쟁을, 6.10 민주항쟁을, 촛불을, 세월호를, 동지들의 죽음을, 통일벼 모내기를 기억하는 마지막 사람이라면 그들의 사상과 용기와 시대정신은 묻힐 것이다. 기억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들을 저승에서 사라지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내가 살아서 실천하고자 했던 그들의 정신과 혼을 잊어버리게 된다. 역사를 잊은 사람이 되어 눈앞의 이익만 좇는 사람이 될 것이다.

 

 평등은 책임을 질 줄 아는 자유로운 인간에 대해 예의를 지키는 것이다. 부자이건 가난하건, 키가 크건 작건, 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인종이나 남녀 차별 없이 존재 그 자체로서 존중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진 한 번뿐인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 가 너무도 분명한 인간의 과제가 아니겠는가? 무엇이 된다는 것을 누가 말릴 것인가? 된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가 없으면 어찌 되는가를 깊이 생각나게 하는 글이 있어 적어 본다.

 

”꿈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여야 한다. - 성공했다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제대로 이끌지 못하고 도리어 망치는 모습을 우리는 종종 보게 됩니다. 이런 일이 생기는 까닭은 그들의 꿈이 “명사”였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되느냐가 중요했을 뿐, 어떻게 사느냐에 대한 (“동사”)고민이 없었던 것이죠. “동사”의 꿈을 꾸는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사회는 더욱 건강해질 것입니다. 인생의 어느 순간에 와 있든 동사의 꿈이 없다면 이제 진짜 꿈에 대해 생각해 볼 때입니다. 여러분 꿈은 무엇입니까?“ -역사의 쓸모/최태성/다산북스/2019

 

 죽음 말고, 또 하나 평등한 것이 있다. 바로 꿈이다. 위의 책 저자는 나에게 꿈이 있느냐고 묻는다. 꿈이 없다면 꿈을 꾸라고 한다. ”동사“의 꿈을 꾸라고 한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꿈을 꿀 수 있다. 꿈조차 가질 수 없는 혹독한 시절이지만 내 마음은 그런 꿈을 갈망하고 있다. 나도 꿈을 꾸고 싶다. 자랑스레 TV에, 유튜브에 자신의 ”명사“의 꿈을 보여주는 그런 꿈 말고, 그 ”명사“의 꿈을 ”동사“로 바꾸는 그런 멋진 꿈을 꾸고 싶다.

 

 나는 자유인이 되어 사는 꿈을 꾼다. 몸을 위해서는 노동을 통해 일용할 양식을 얻고, 운동을 통해 건강을 유지한다. 정신을 위해서는 내가 기억하지 않으면 사라질 내 인생에 빛을 비추어준 많은 사람의 사상과 시대정신 그리고 용기와 삶의 모습을 기억하며 본받으며 살고자 한다. 또한 내가 좋아하는 취미를 예술의 경지로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때 주어지는 자유와 평화를 마음껏 누리는 자유인으로서 말이다. 평등하지 못한 세상에 태어났지만, 평등하게 꿈을 꾸고 꿈을 이루기 위해 살다 평등하게 죽는 것이 인생이 아니겠냐는 생각을 올해 만60살이 되는 2021년 5월의 끝자락에서 해본다.


강태호(참여자치군산시민연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