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인간

군산시민연대
2023-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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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인간


 

 무인 정찰기가 넘어왔다고 핵이 있든 없던 보복과 응징으로 본때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대통령이 압도적으로 우월한  전쟁준비를 해야 한다며 전쟁을 부추기는 듯한 위험한 발언을 계속하고 있다. 안으로는 야당의 대표가 검찰에 소환되는 공안정국이요, 밖으로는 전쟁정국이다. 여차하면 탈탈 털고, 저차하면 폭격하겠단다. 참으로 하책이다. 같이 맞불을 놓으면 누가 다치겠는가? 돈 많고, 뒤 배경 좋은 사람들은 도망가거나 벙커에 숨어 전쟁영화를 보듯 낄낄거리겠지만 우리네 가엾은 민중들은 총알받이밖에 더하겠는가? 지금 전쟁은 이기고 지는 것이 아니다. 전쟁이 터지면 모든 것이 쑥대밭이 되기 때문에, 기분 나빠도 될 수 있으면 건들지 않고, 서로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려 애써야하는 것이지 윽박지르고 협박하려 해서는 곤란하다. 그들이 왜 그러한가를 묻고 대화를 통해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서로 감정이 상해 정신이 돌아서 전쟁이 나면, 핵이라도 터질 양이면 남북한 수많은 민중들이 다 죽어나갈 터 천추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금방 끝날 것 같았던 변방의 우크라이나와 초강대국 소련의 전쟁은, 애국심을 독려하며 전쟁터로 몰아가는 지도자의 욕심과 어리석음으로, 1년이 다 되어가며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난민이 들끓어 죽을 판인데, 양쪽 나라에 무기를 팔아 돈을 챙기는 나라들은 살판이 났는가 보다. 자본에는 눈물이 없다. 이윤이 있을 뿐이다. 그 자본을 굴리는 사람이 눈물이 있어야 자본에도 눈물이 생기는 법이다. 남의 집 곳간 털듯이 돈 되는 일에는 물불을 안 가리는 나라들이 즐비하다.

 

 튀르키예와 시리아에 지진이 발생하여 수 만 명이 죽고 수 십 만 명이 매몰되었고, 다친 사람은 셀 수도 없으며  수 백 만 명의 이재민이 생겼다. 과학이 급속도로 발달하여 꿈인지 생시인지도 모를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에 살고 있고, 인간이 달(나라)에 가고, 화성에 탐사 선을 보내고 있는데도 말이다. 어떤 부자는 화성 이주민을 모집하고, 그에 혹한 어떤 사람들은 화성 이주를 꿈꾸지만 정작 발 딛고 사는 지구별의 참상에는 손을 쓸 수 없다. 어쩔 수 없는 천재(天災)지변인 지진발생을 감지할 수는 있어도 지진이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지진은 달아나도 쫒아오고,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피해를 남긴다.

 

 현 정부가 다시 짓겠다는 핵발전소도 사고 나면 걷잡을 수 없는 하지만 짓지 않으면 막을 수 있는 인재(人災)지변 이다. (한번 가동하면 끄는 데만 수 십 년이 걸리고, 사고 나면 막을 수도 없고, 걷잡을 수 없어 수십만 아니 수백만의 인명피해를 낳고, 수 백 년 간 불모의 땅으로 변하고 만다. 거기서 나오는 핵폐기물은 저장할 수 있는 기술이 없고, 있다 해도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서 만든 바위굴에 수 십 만 년 안전하게 저장해야 방사능의 유출을  막을 수 있다하니, 후손들에게 이런 죄가 어디 있으며, 전기 좀 쓰자고 이런 손해가 어디 있나. 그야말로 엄청난 인재(人災)를 끌어안고 사는 것이다.)자연 재해 앞에서는, 신의 자리를 넘보는 교만하고 자신만만한 인간이, 얼마나 무능한가? 우주를 정복하겠다는 그 찬란한 과학기술은 얼마나 무기력한가? 전 지구적으로 집집마다 회사마다 공장마다 전기 쓰는 일을 줄이면서, 친환경 에너지를 활용하는 길이 있다고 외치는데 왜 사는 길은 가지 않고 파멸의 길로만 가려는가. 빙산은 빛의 속도로 녹고, 아마존의 밀림은 처참하게 베어지고, 폭우에 폭설에 폭염에 토네이도(폭풍)에 지구가 엉망인데도 맘에 안 들면  전쟁을 일으켜서라도 지배하려는 인간의 탐욕과 폭력은 지구를 멸망시키고도 남는다. 그 배후에는 돈이 있다. 돈(정신이 돌아버린, 혹은 정신이 나간, 탐욕에 찌든)인간이 있다.

 

"절대적으로 해로운 사회-우리에게 구매와 소유, 저장을 조장한 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버리라고 압박하는 사회. 압박하는 이유도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앞선 것이 유행이 지났거나 구식이라서 다른 물건을 또 살 자리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더없이 악랄한 행위다." -어떻게 행복해질 것인가/크리스토프 앙드레, 알렉산드르 졸리앙, 마티유 리카르/김수진/정민미디어/2022

 

 못된 돈 자본가와 사업가들은 천문학적 돈을 들여 인간의 심리를 연구하고, 심리를 조작하고, 말초적인 욕망을 촉발시켜 알지도 못하게 속는지도 모르게 인간을 물질의 노예로 만들어간다. 소유해도 끝이 없도록 이것이 바로 행복이라고 인간의 욕망을 한없이 부채질하여 돈을 쓸어간다. 세상은 경쟁으로 핏발이 서고, 돈 많고 성공한 사람이 선망의 대상이 되고, 빨리 빨리가 미덕이 되고, 신상품이 인격이 되고, 불신과 혐오의 절대적으로 해로운 세계로 빠져 들고 있다.

 

 인간은 상대방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최소한의 예의를  잃어가고, 사회는 절대 해로운 방향으로 가고, 푸르던 자연은  잿빛으로 멍들고, 환경은 대기오염과 온실가스로 죽어 가고 있다. 어쩔 것인가? 지금 멈추어야 한다. 이만하면 되었다. 얼마나 더 편하고 얼마나 더 소유하려 하는가? 내가 더 가지려하면 누군가의 것을 빼앗아야만 한다. 돈 인간들이여 정신을 차려라. 우리들이 굶주려 다 죽어 가면 긁어 먹을 것이 없으면 멈추려는가? 아니 벌은 돈 다 빼앗기고 빚더미에 앉아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구걸하는 그대들의 노예 되기를 바라는가? 제발 그런 추악한 꿈은 꾸지도 말라. 이 정도면 되지 않았는가. 그대들의 성공으로 인한 부의 축적도 혼자서 발광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그대가 계획하고 노력한 만큼 타인의 호응과 보답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다면 성과를 이룰 수 없듯, 사회의 구성원인 타인의 관심에 대한 보답으로 사회를 위해 성과물 일부를 되돌려 보내줄 때, 서로가 만족하고 승리하는 선순환 관계가 맺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돈 인간이 돈으로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포탄에 맞아 죽는, 무너지는 건물더미에 깔려 죽는 어머 어마한 사람들을   어디 한 명이라도 살릴 수 있겠는가? 전쟁이 길어지며 그들이 죽어야 떼돈을 버는 데 그 벼락 맞을 돈이 사람을 살릴 수 있겠는가? 그렇게 번 돈으로 도대체 무엇을 한단 말인가? 사람들 깔보고, 호사하고, 자랑 질하고, 잘난 체하고  그 다음에는? 통장에서 통장으로 옮겨가는 숫자뿐인 그 돈으로 무엇을 하려는가? 컴퓨터 다운되고, 데이터 지워지면 사라질 숫자가 아니더냐.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농민이 공급을 거부하고 자급자족한다면, 집을 짓는 건축노동자들이 철근을 모래를 자갈을 짊어지지 않는다면, 옷을 생산하는 노동자들이 다 공장을 떠나버리면, 상품을 소비하는 시민들이 필요 이상의 것을 사지 않으면, 지금까지 신주단지 모시듯 하던 돈을 쓰레기 취급하면 숫자로만 남은 그 돈을  어디다 쓸 것이냐. 어느 날 조만간에 (지금 당장이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못된 습관을 바꾸려면 시간이 걸릴 터) 각자의 뼈아픈 성찰과 용기로 물신숭배 가치관이 변하여 모든 사람이 내적으로 인간존중과 자연과의 공생이라는 깨달음이 일어난다면 그 돈은 정말 쓰레기가 되지 않겠는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체제 속에서는 돈(자본)이 없는 사람은 돈을 벌 수 없는 구조다. 간혹 아이디어로 떼돈 버는 사람도 있다지만 자본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빛을 볼 수가 없다. 우리 같이 몸뚱어리를 밑천 삼아 사는 사람이 살아남으려면 어찌해야 하나. 자본가가 온갖 미디어 광고로 보여주고 정해주는, 줄기차게 우리를 현혹시키는 멋지고 폼 나는 성공,  행복의 기준을 따르지 않는 용기가 필요하다. 자신만의 행복을 설계해야 한다. 행복은 어떤 목표를 달성하는 결과에 있지 않고, 과정에 있다는 것을, 살아가는 순간순간의 작은 성취(친절, 배려, 공감, 나눔으로 인한 감동과 기쁨)에 있다는 것을 몸으로 가슴으로 느껴야 한다. 생존에 필요한 만큼만(필요한 만큼은 각자의 기준이 적용될 터인데 참으로 난감하다. 그 똑똑하고 위대한 과학으로 수치를 정해줄 수는 없는가? ) 소유하면 만족하자. 이 길만이 오로지 돈을 긁어모으려는 돈 인간들이 돈을 더 벌 수 없도록 하는 방법이지 싶다. 씀씀이는 절약하고, 욕심은 절제할 수밖에 없다. 더 고상하게 학문적으로 데이터를 앞세우며 주장을 펼쳐야 하는데. 이렇게 밖에 말하지 못하는 내가 참 거시기(전라도 사투리로 이 말 속에는 무수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독자들은 느낌으로 알 것이다.)하다. 짧은 시 한수

 

괜찮은 걸까?

 

예전의 관습과 악습이 몸과 정신에 들어붙어

자신을 옭아매어도

의문을 품지 않고 저항도 하지 않고,

타고난 것은 하늘의 뜻이라며 체념하고

살아가며 만족해해도 괜찮은 걸까?

 

수십 억 년 전 생명체로 지구에 와 진화를 거듭하고

부모의 사랑으로 여기 이곳에 인간으로 존재하며

무엇을 향해가고 무엇을 이루려 하는지 모른 채

하루하루 빈둥빈둥 살아가면서

이것도 하나의 인생이라 여겨도 괜찮은 걸까?

 

어디에다 발표할 일도 없고,

책으로 남길 일은 더구나 없으면서

노력하면 연대하면 사랑하게 되면

인간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롭고 행복해질 수 있다고

신기루 같은 말만 내뱉는 내가

이 소중한 지면을 빌어 글을 쓰는 것도

괜찮은 걸까?

 

정말 괜찮은 걸까?

 


강태호(참여자치군산시민연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