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생론

어떤 아파트는 그곳 주민이 아니면 들어갈 수가 없어 아파트 밖에다 차를,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걸어가야 한다. 경비실에서 그분들이 거하는 궁궐(?)까지 무겁든 가볍든 주문하신(?) 물건을 전해야 하는 택배기사는 시간이 생명인데, 이곳에서 시간을 지체하고 화물처럼 화물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그들에게 진상(?)하고 왜 이렇게 늦었냐며 꾸지람을 듣고 물건값을 손에 쥐어야 한다. 하다 하다 별 갑질을 다 한다. 집단이기 증상에 빠져 인간에 대한 예의나 존중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가 없다. 어떤 사람들은 “늦어도 괜찮아요. 기다리겠습니다.”라고 친절하게 말한다. “너무 수고 많아요. 감사히 먹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힘이 납니다.”라는 쪽지를 서로 주고받으며 짧은 행복감을 나눈다.
코로나 19가 기승을 부리던 때에 청정지역 전주에서 창궐지역 대구로 간 간호사가 있다. 2주간 봉사 기간이지만 집중하기 위해 퇴사라는 배수진을 치고 가족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가고야 만다. 가서 현장을 보니 도저히 떠날 수 없어 4주간을 더 머물러 봉사하다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는다. 환자로서 31일 입원하고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후유증으로 냄새 맡기가 어렵다. 코로나 19를 막기 위해 봉사하기도 하고, 코로나 19를 치료받기 위해 환자가 되어본 경험을 하게 된다. 하지만 자신이 선택한 그 6주간은 자유로웠다고 후회하지 않는다고 당차게 말한다.
"생명을 담보로 일하는 간호사이기도 하고, 간호사가 부족하고 절실하게 필요한 곳에서 생명이 죽어가는 데 모른 체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나와 가족을 위한 삶이었다면 타인을 위한 삶도 살아 보기 위해"
인생이란 무엇인가? 살면서 인생이 무엇인가를 알려고 노력하다가 죽어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사람에 따라 다 다르게 정의할 것이다. 성공(물질적인 부를 쌓는 것, 명예를 드높이는 것, 권력을 가지는 것 등등), 사랑, 행복, 자유, 평화 등등을 이루거나 찾거나 누리는 것. 누군가는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는 것이 인생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나는 인생이란 커다란 목적이 없다 해도, 커다란 의미를 남기지 못해도, 삶과 죽음 사이에 있는 지금, 이 순간을 알차게 살아내는 즐거운 여행이라 생각한다. 태어나기 전에는 내가 여기에 없었고, 죽은 다음에는 내가 여기에 없을 것이니. 지금 여기 내가 존재하고 있는 이 순간을 놓치면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타인의 성공을 부러워하고 나도 그랬으면 하고 바라고,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어보거나, 그와 관련된 책을 읽거나 흉내를 내거나 노력을 하지만 잘되지 않는다. 성공에는 능력도 어느 정도 필요하고 노력도 해야 하지만 시기와 때가 잘 맞아서 떨어져야 한다.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무언가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시기가 오고 그것이 폭발적으로 반응하는 때를 만나야 소위 대박이 나는 것이다. 실력을 쌓는 것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수없이 실수와 실패를 반복한다. 아무리 애써도 표시가 나지 않는 시기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응집되어 용솟음치는 때가 오면 실력이 껑충 뛰어오른다. 한 번 오른 실력은 평소에 하는 대로 몸만 풀어주면 –살짝 건드려만 주어도 - 그대로 유지 된다. 이제부터는 훈련하는 대로 실력이 말을 한다. 실력이 빠르게 성장하는 것이다. 그러다 또 막히는 때가 오고, 지루하고 견디기 힘든 시기를 지나야 한다. 또 한 단계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또 지루한 그렇지만 조금씩 발전하고 있는 시기를 견디어야 한다. 그렇게 인생은 훈련하면서 실패를 견디면서 성장하고 성숙해져 가는 것이다. 그러다 마지막에는 삶에서 죽음으로, 고통스럽고 때론 행복했던 생명에서 편안하고 평화로운 죽음의 안식으로 뛰어오르는 것이다. (삶 속에서 받은 고통도 엄청난데 죽음에서도 고통스럽다면 살아 있는 존재들이 너무 슬프지 않은가?)
세상은 서로의 도움으로 돌아간다. 자본주는 자본을 생산수단을 무기로 살아가고, 돈이 없는 노동자는 노동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아 생계를 유지한다. 자영업자는 유산을 물려받거나 임금노동자로서 번 돈을 투자한 것이다. 나의 식탁에 오르는 식품이 내가 쓰는 생필품이 저절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땀과 노력의 결실이니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 쓸 일이다. 필요한 만큼 (‘필요한 만큼’이라는 이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고, 생활 수준마다 다르고, 사회적 지위나 여건마다, 시선마다 달라서 정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자신의 기준으로 생각할 수밖에) 서로 얻고, 남으면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는 사람들, 노약자와 어린아이들(내가 생산수단을 만들어내거나, 일할 기회를 만들어준 사회적 약자들. 이들이 없다면 그만큼 나의 자리가 줄어들 것이다)을 위해 내어놓으면 되겠다는 순진한 마음도 먹어본다.
하지만 인권을 무시하거나 예의를 지키지 않으면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가진 재물과 권력과 명예가 그 사람의 인격(인성과 품격)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다. (그에 걸맞은 인격을 갖추면 좋겠지만 )그들이 가진 것에 겁먹지 말고, 그들이 저지른 행위에 집중해서 시시비비를 따져야 한다. 그 상황과 사건과 비리와 불의에 맞서야 한다. 그리고 그 속에 숨어 있는 진실을 철저히 규명하여 드러내야 한다. (사건과 진실은 다르기 때문이다) 그들의 배경에 기가 눌리면 싸움은 해보나 마나다. 무섭고 두렵지만 한 발 내디뎌야 한다. 누구를 막론하고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억압하면 함께 분노하고 싸워야 한다. (왜 함께 이냐고요. 그 일이 바로 내가 겪는, 겪어야 일이기도 하고 혼자서는 두렵고 용기가 나지 않지만 함께하면 힘들더라도 서로에게 힘이 되어 자유를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참 묘하다. 내가 홀로 자유로워지고자 하면 고독에 들어가 찾아서 누리면 된다. 세상 속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내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타인과 연대해야 한다. (물론 홀로 싸워서 자유를 누리며 사는 멋진 사람들도 있다.)이 과정에서 내 자유가 소중하면, 타인의 자유도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생각을 더 확장하면 만물에 대해 예의를 갖추고 존중하게 된다.
내 생각 없이 살게 되면 남이 하라는 대로 사는 노예의 삶을 살게 되고, 타인들이 내 삶을 맘대로 주무르게 된다. 모르면 배우고, 하기 싫어도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싸워야 한다. (이도 저도 싫으니 내버려 두라면 할 말은 없다.) 사람한테 불편하게 배워서 편리하게 사용해야 오래가고 사람 소중한 것을 안다. (예전에는 스승의 사상과 기술과 지혜를 직접 전달받는 도제가 있었다. 배우면서 성장하는 자부심과 기술을 예술의 경지까지 승화시키는 기쁨이 있었다.) 배운 만큼 사색한 만큼 아는 만큼 깨달은 만큼 보이는 법이다. 세상이 얼마나 크고 넓은지를 알 때 생명이 인생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깨달을 때 세상은 확장되고 시야는 넓어진다. 이때부터 우물 안에서 세상 밖으로의 삶이 펼쳐지는 것이다. 물론 그만큼 고난과 역경도 감수해야 한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의미 없는 삶이란 없지 싶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수많은 해답이 있을 뿐이다.다만 인간을 존재 자체로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연과 함께 타인과 함께 더불어 살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삶을 만들어가는 수밖에.
강태호(참여자치군산시민연대 대표)
신인생론
어떤 아파트는 그곳 주민이 아니면 들어갈 수가 없어 아파트 밖에다 차를,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걸어가야 한다. 경비실에서 그분들이 거하는 궁궐(?)까지 무겁든 가볍든 주문하신(?) 물건을 전해야 하는 택배기사는 시간이 생명인데, 이곳에서 시간을 지체하고 화물처럼 화물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그들에게 진상(?)하고 왜 이렇게 늦었냐며 꾸지람을 듣고 물건값을 손에 쥐어야 한다. 하다 하다 별 갑질을 다 한다. 집단이기 증상에 빠져 인간에 대한 예의나 존중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가 없다. 어떤 사람들은 “늦어도 괜찮아요. 기다리겠습니다.”라고 친절하게 말한다. “너무 수고 많아요. 감사히 먹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힘이 납니다.”라는 쪽지를 서로 주고받으며 짧은 행복감을 나눈다.
코로나 19가 기승을 부리던 때에 청정지역 전주에서 창궐지역 대구로 간 간호사가 있다. 2주간 봉사 기간이지만 집중하기 위해 퇴사라는 배수진을 치고 가족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가고야 만다. 가서 현장을 보니 도저히 떠날 수 없어 4주간을 더 머물러 봉사하다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는다. 환자로서 31일 입원하고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후유증으로 냄새 맡기가 어렵다. 코로나 19를 막기 위해 봉사하기도 하고, 코로나 19를 치료받기 위해 환자가 되어본 경험을 하게 된다. 하지만 자신이 선택한 그 6주간은 자유로웠다고 후회하지 않는다고 당차게 말한다.
"생명을 담보로 일하는 간호사이기도 하고, 간호사가 부족하고 절실하게 필요한 곳에서 생명이 죽어가는 데 모른 체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나와 가족을 위한 삶이었다면 타인을 위한 삶도 살아 보기 위해"
인생이란 무엇인가? 살면서 인생이 무엇인가를 알려고 노력하다가 죽어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사람에 따라 다 다르게 정의할 것이다. 성공(물질적인 부를 쌓는 것, 명예를 드높이는 것, 권력을 가지는 것 등등), 사랑, 행복, 자유, 평화 등등을 이루거나 찾거나 누리는 것. 누군가는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는 것이 인생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나는 인생이란 커다란 목적이 없다 해도, 커다란 의미를 남기지 못해도, 삶과 죽음 사이에 있는 지금, 이 순간을 알차게 살아내는 즐거운 여행이라 생각한다. 태어나기 전에는 내가 여기에 없었고, 죽은 다음에는 내가 여기에 없을 것이니. 지금 여기 내가 존재하고 있는 이 순간을 놓치면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타인의 성공을 부러워하고 나도 그랬으면 하고 바라고,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어보거나, 그와 관련된 책을 읽거나 흉내를 내거나 노력을 하지만 잘되지 않는다. 성공에는 능력도 어느 정도 필요하고 노력도 해야 하지만 시기와 때가 잘 맞아서 떨어져야 한다.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무언가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시기가 오고 그것이 폭발적으로 반응하는 때를 만나야 소위 대박이 나는 것이다. 실력을 쌓는 것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수없이 실수와 실패를 반복한다. 아무리 애써도 표시가 나지 않는 시기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응집되어 용솟음치는 때가 오면 실력이 껑충 뛰어오른다. 한 번 오른 실력은 평소에 하는 대로 몸만 풀어주면 –살짝 건드려만 주어도 - 그대로 유지 된다. 이제부터는 훈련하는 대로 실력이 말을 한다. 실력이 빠르게 성장하는 것이다. 그러다 또 막히는 때가 오고, 지루하고 견디기 힘든 시기를 지나야 한다. 또 한 단계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또 지루한 그렇지만 조금씩 발전하고 있는 시기를 견디어야 한다. 그렇게 인생은 훈련하면서 실패를 견디면서 성장하고 성숙해져 가는 것이다. 그러다 마지막에는 삶에서 죽음으로, 고통스럽고 때론 행복했던 생명에서 편안하고 평화로운 죽음의 안식으로 뛰어오르는 것이다. (삶 속에서 받은 고통도 엄청난데 죽음에서도 고통스럽다면 살아 있는 존재들이 너무 슬프지 않은가?)
세상은 서로의 도움으로 돌아간다. 자본주는 자본을 생산수단을 무기로 살아가고, 돈이 없는 노동자는 노동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아 생계를 유지한다. 자영업자는 유산을 물려받거나 임금노동자로서 번 돈을 투자한 것이다. 나의 식탁에 오르는 식품이 내가 쓰는 생필품이 저절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땀과 노력의 결실이니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 쓸 일이다. 필요한 만큼 (‘필요한 만큼’이라는 이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고, 생활 수준마다 다르고, 사회적 지위나 여건마다, 시선마다 달라서 정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자신의 기준으로 생각할 수밖에) 서로 얻고, 남으면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는 사람들, 노약자와 어린아이들(내가 생산수단을 만들어내거나, 일할 기회를 만들어준 사회적 약자들. 이들이 없다면 그만큼 나의 자리가 줄어들 것이다)을 위해 내어놓으면 되겠다는 순진한 마음도 먹어본다.
하지만 인권을 무시하거나 예의를 지키지 않으면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가진 재물과 권력과 명예가 그 사람의 인격(인성과 품격)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다. (그에 걸맞은 인격을 갖추면 좋겠지만 )그들이 가진 것에 겁먹지 말고, 그들이 저지른 행위에 집중해서 시시비비를 따져야 한다. 그 상황과 사건과 비리와 불의에 맞서야 한다. 그리고 그 속에 숨어 있는 진실을 철저히 규명하여 드러내야 한다. (사건과 진실은 다르기 때문이다) 그들의 배경에 기가 눌리면 싸움은 해보나 마나다. 무섭고 두렵지만 한 발 내디뎌야 한다. 누구를 막론하고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억압하면 함께 분노하고 싸워야 한다. (왜 함께 이냐고요. 그 일이 바로 내가 겪는, 겪어야 일이기도 하고 혼자서는 두렵고 용기가 나지 않지만 함께하면 힘들더라도 서로에게 힘이 되어 자유를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참 묘하다. 내가 홀로 자유로워지고자 하면 고독에 들어가 찾아서 누리면 된다. 세상 속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내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타인과 연대해야 한다. (물론 홀로 싸워서 자유를 누리며 사는 멋진 사람들도 있다.)이 과정에서 내 자유가 소중하면, 타인의 자유도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생각을 더 확장하면 만물에 대해 예의를 갖추고 존중하게 된다.
내 생각 없이 살게 되면 남이 하라는 대로 사는 노예의 삶을 살게 되고, 타인들이 내 삶을 맘대로 주무르게 된다. 모르면 배우고, 하기 싫어도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싸워야 한다. (이도 저도 싫으니 내버려 두라면 할 말은 없다.) 사람한테 불편하게 배워서 편리하게 사용해야 오래가고 사람 소중한 것을 안다. (예전에는 스승의 사상과 기술과 지혜를 직접 전달받는 도제가 있었다. 배우면서 성장하는 자부심과 기술을 예술의 경지까지 승화시키는 기쁨이 있었다.) 배운 만큼 사색한 만큼 아는 만큼 깨달은 만큼 보이는 법이다. 세상이 얼마나 크고 넓은지를 알 때 생명이 인생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깨달을 때 세상은 확장되고 시야는 넓어진다. 이때부터 우물 안에서 세상 밖으로의 삶이 펼쳐지는 것이다. 물론 그만큼 고난과 역경도 감수해야 한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의미 없는 삶이란 없지 싶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수많은 해답이 있을 뿐이다.다만 인간을 존재 자체로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연과 함께 타인과 함께 더불어 살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삶을 만들어가는 수밖에.
강태호(참여자치군산시민연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