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치론

군산시민연대
2022-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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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치론


 나는 정치를 잘 모른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에 참여해서 지도자를 뽑고, 그 지도자가 나라를 잘 이끌어 가도록 -자유와 평화를 향해- 지지해주고, 때로 비판하고, 너무 잘못하면 촛불을 들어 끌어내리는 것이 정치(정치 행위)로 알고 있다. 정책이 어떻게 만들어져서, 어떻게 실행되고, 어떻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는지는 속속들이 알지 못한다. 민중들이 제대로 살려면 제대로 뽑았거니 대충 믿고 가는 것이다. 나는 배워 본 적이 없고, 관심이 없어서 그러해도 요즈음 청소년들은 어떤가? 학교에서 실생활에서 민주주의와 정치에 대해서 제대로 배우고 있는지, 사물과 현상을 깊이 생각하여 당당하게 말하고 타인과의 토론을 통해 성장하고 있는지, 아니면 수능 시험 잘 봐서, 취직 잘 되는 대학에 가기 위해 야간자율학습에 그것도 모자라 사설학원에 밤늦도록 공부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을 배워 삶의 토대를 만들고, 때로  익혀 실력을 쌓는 공부-학습-이 아니라, 점수를 잘 맞으려고 시험준비만 하는)

 

 어쨌거나 선거에서 뽑힌 사람들이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부끄러워 아이들을 볼 수가 없다. 방송을 보거나,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식이 늘 난장판이니 아이들은 그들을 보고 배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 행태를 반면교사로 삼아 보고 배우지 않기도 하겠지, 아니  그들과는 다르게 살아야 인간답게 사는 길이 열릴 것이다.

 

 검찰총장을 사직하고 정치에 뛰어든 지 얼마 안 되는 기간에 간발의 차이로, 선거를 통해 당선되어, 2달여 인수위원회 작업을 마치고,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막이 올랐다. 취임사를 듣지는 못했고, 인터넷 기사에서 취임사 전문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느낌을 아래 5가지로 추려서 적어 본다.

 

1. 도약과 성장

“빠른 성장 과정에서 많은 국민이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고, 사회 이동성을 제고함으로써 양극화와 갈등의 근원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도약과 빠른 성장은 오로지 과학과 기술, 그리고 혁신에 의해서만 이뤄낼 수 있는 것입니다.”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가 윤석열 정부의 경제 분야 국정 목표라고 한다. 어떤 민간(혹은 업체, 또는 단체)이 정부가 밀 만한 사업을 구상해 내겠는가, 대기업 총수라면 모를까. 내가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면 정부가 민다는 뜻인지. '재벌이 끌고 정부가 규제를 풀어주는 자유시장 경제'를 강화해서 대기업들의 배를 불리고,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의 눈치를 보며 하도급을 기다려야 하는 신세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지. 도약과 빠른 성장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생각해 보라. 과학과 기술은 이 정도면 되지 않았는가? 달나라도 가고, 화성도 가고 머나먼 천왕성도 가는 기술도 있겠다. 현실과 가상을 연결하여 꿈인지 생시인지도 모르게 숨 가쁜 삶을 살고 있는데, 무얼 더 얻으려는가 족한 줄 알았다면 그만두어라. 과학기술 개발 혁신이라는 이름 아래 신음하는 자연생태계를 보라. 울부짖는 이웃을 보라. 그들과 함께 오손도손 살아가는 것이 그리 어려운가.

 

2. 자유의 확대

"번영과 풍요, 경제적 성장은 바로 자유의 확대"라며 "자유는 보편적 가치다. 어떤 개인의 자유가 침해되는 것이 방치된다면 우리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자유마저 위협받게 된다."

☞자유는 인간뿐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것에 있다. 내가 상대방을 죽일 자유까지 있는 만큼, 상대방 자유에 의해 죽임을 당할 각오도 해야 한다. 권력과 자본을 가진 자가 자유를 자신의 능력인 양 휘두르는 것을 보지 못했는가. 도대체 어디까지 자유를 확대하고, 책임은 면제할 것인가. 내가 하면 나라를 위한 일이고, 남이 하면 파렴치한 일인가? 번영과 풍요와 경제적 성장이 인간의 삶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존중(인간을 포함하여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 아니 자연 그 존재 자체)과 배려(타인의 처지에서 나를 돌아보는, 나의 욕심을 줄이고 타인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알아 공감하면 함께 길을 가는)가 삶을 살찌우는 것이다.

 

3. 양극화 해소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국내적으로 초저성장과 대규모 실업, 양극화의 심화와 다양한 사회적 갈등으로 인해 공동체의 결속력이 흔들리고 와해하고 있습니다.”

☞자유 경제시장 확대는 양극화 심화의 원인이다. 우리나라의 부가 대기업 몇 개와 상위 1% 에 쏠려 있고, 전 세계 90%의 부가 각 나라의 산업 근간을 흔들며, 인간의 존엄한 삶을 무시하고, 이익에만 몰두하는 다국적 기업과 양심 없는 선진국으로 쏠린다. 전 세계 부의 총량은 매년 늘어나는데 3세계 국가는 기아와 질병에 허덕이고 있는 것을 보라. 자유 확대에는 그에 따른 막중한 책임을 부과해야 하며, 기회의 평등과 분배의 정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4. 반지성주의

“국가 간, 국가 내부의 지나친 집단적 갈등에 의해 진실이 왜곡되고, 각자가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거나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해치고 있습니다.”

☞다수의 힘으로 권력으로 자본으로 민중을 억압한 사람들이 과연 누구인가를 생각해 보지 않았는가. 단식하는 사람 앞에서 햄버거를 게걸스럽게 먹고, 세월호 참사를 어묵탕으로 빗대는 이런 무자비한 집단들은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누가 다수의 힘으로 상대방의 의견을 억압하고 뭉개고, 살아왔는지 잊었는가? 누가 반지성집단에 속하고 있는지 모르는가? 지성은 과연 무언가? 지성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을 개념에 의하여 사고하거나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판정하는 오성적 능력이나 그러한 정신의 기능." 한마디로 여러 상황에 대해 윤리적-도덕적, 법적-으로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행동할 바를 내 머리로 깊이 생각하는 것이다. 과연 대통령은 자신의 국정철학을,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과 행정을 책임지는 장관들과 법을 다스리는 판검사들과 사회 각계각층의 지도자들은 시대정신을 펼칠만한 지성을 갖추고 있는가?  아니면 지금의 상황을 바르게 인식하고 있는가? 아니면 선거가 끝났으니까 마음대로 말하고, 누가 보기에도 허점이 많은 공약을 관철하기만 하면 되는가? 국민이 원하든 말든 연설문에 쓰여 있는 대로 하면 그뿐인가?

 

5. 북한 비핵화

“북한이 핵 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한다면 국제사회와 협력하여 북한 경제와 북한 주민의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담대한 계획을 준비하겠습니다. 북한의 비핵화는 한반도에 지속 가능한 평화를 가져올 뿐 아니라 아시아와 전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도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고등학생이 초등학생하고 싸움하면 누가 이기겠는가. 초등학생이 지지 않으려면 고등학생이 다가오기 전에 돌멩이를 던지거나, 싸움이 붙으면 돌멩이로 등이라도 찍어야 하지 않겠는가. 강대국은 핵으로 무장하고 약소국들은 비핵화하라 하면 게임이 되겠는가? 북한이 비핵화하는 순간 먹을 것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경제 종속은 뻔하니 핵을 포기하지 않고, 미사일 발사 시위를 하는지 모른다. 우리나라도 미국과 일본의 사탕발림 원조를 받고 지금껏 허덕이고 있지 않은가. 인간의 생존 자체를 귀히 여기는 것이 인간의 존엄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얘기하는 사람이 이것 들어주면 먹을 것을 주겠다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웃기는 행위지 않은가. 나는 그렇게는 못 한다. 종속의 삶보다는 자유의 삶을 원하기 때문이다. 자유와 평화를 외치는 취임사처럼 말이다. 빵보다는 자유를 달라고 외칠 것이다.

 

무에서 유가 생기고, 유에서 생명 만물이 생긴 이래(이렇게 알고 있을 뿐 진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어쩔 수 없이 생존본능에 따른다는 것은 수 억 년 전부터 생명에 깃들어있던 본능의 이기적 유전자가 이끌던 대로 산다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 이기적 유전자와 함께 진화해온 사유하는 존재로서 삶을 반성하고, 사물을 알아가고, 이치를 깨달아 인간이 가야 할 길을 본능적으로 알게 하는 성찰의 유전자도 같이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이기적 유전자로 인한 행태에는 관대하고, 성찰의 유전자는 따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기적 유전자 고리를 끊고자 하고, 성찰의 유전자를 통해 절제하고자 하고, 서로 배려하고, 감싸주고, 돌보고, 사랑하는 상생의 유전자를 만들어 물려주면 되지 않는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인간은 사유하는 동물이라고 자랑하는 이상 노력은 할 수 있으리라 본다. 우리 세대에서 이루진 못하더라도 조금씩 애쓰다 보면 미래의 먼 세대는 상생의 유전자가 이끄는 대로 행복하게 살지 않을까? 도약과 성장을 통한 역동적 경제보다는 공정한 경제가 필요하고, 자유의 확대만큼이나 책임의 가치가 더 막중하며, 양극화 해소를 위해서는 공정한 기회와 정의로운 분배가 필요하다. 지성을 갖추지 않은, 과학기술 지상주의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고, 강대국의 잇속 숨긴 발언에 무작정 따르며 북한 비핵화를 주장하기 이전에 먼저 북한의 고충을 먼저 듣는 것이, 힘든 살림을 도와주는 것이 먼저이지 싶다. 바로 정의와 공정과 자유와 지성을 가지고 사람을 살리고자, 인간답게 살고자 조금씩 애쓰는 것이, 사랑과 평화로 이끄는 것이 정치가 아니겠는가.


강태호(참여자치군산시민연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