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같은 꿈은 꾸지도 말라
[사진출처-신현민, 월명호수 나무의 여름과 겨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대통령 후보들이 연일 바쁘게 지역으로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 각계각층 직업인들을 만날 때마다 입만 열면 대한민국의 꿈-미래의 비전-을 이야기하고, 그 지역 민중의 삶을 때깔 나게 해주겠다고 공약(꼭 지키겠다는 공공의 약속인데 당선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실행이 어렵다고 축소하거나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헛된 약속이 되지 않기를)을 쏟아내고 있다.
내 꿈(그때는 직업-의사, 교사 변호사, 검사, 판사 등-이 꿈인 줄 알았다. 그 직업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가 어떻게 살 것인가가 꿈이란다. 그러면 어떻고 이러면 어떤가, 아무튼.)은 시시때때로 변했고 지금도 변하고 있다. 중학교 때는 범인 잡는 형사였다가, 이소룡의 무술영화를 보고는 무도인을, 권투영화 "록키"를 보고는 감독을 꿈꾸었다. 한낱 치기어린 청춘의 꿈이었지만 흉내 내어보는 나의 열정까지 막아내지는 못했다.
독서에 취미를 붙이면서, 신춘문예 당선을 꿈꾸며 시와 소설을 습작하는 문학도-인간을 알려면 철학을 해야 한다는 교수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철학과를 택했다. 문학은 인간을 탐구하는 것이라 위안 삼으며- 이기도 했다. 아직도 문학도의 길은 진행 중인데 다음의 벽-필사의 각오와 의지-을 만나 좌절하기 일보 직전이다.
치밀한 준비와 상상력, 작가정신과 인내와 끈기 없이는 단 한 줄도 잡아낼 수 없는 것이 소설쓰기의 어려움이자 기쁨이라고 말하는 글 감옥에 빠진 어느 소설가(황홀한 글 감옥/조정래/참언론 시사인북/2014)의 말마따나 나는 소설가가 되기는 영 글렀다.
사물과 현상을 대하는 따뜻한 시선과 꿰뚫어 보는 능력 그리고 그 느낌을 문장으로 잡아내는 섬세함이 없으면 시인이 될 수 없다. 거기다 목숨까지 걸라하는 시인(목숨을 걸고/이광웅/금강하구둑 시비에 새겨져 있는 육필시)도 있나니 말해무엇하리. 그러나 어떠랴. 나는 그렇게 시와 소설을 쓰지는 못하지만 심심찮게 가족에게 보여주는 짧은 글-내 생각에는 시-을 쓰고 있고, 지금 이렇게나마 시민연대 지면을 빌어 칼럼-내 생각에는 소설-을 쓰는 데 만족한다.
될 성부른 나무 떡잎-나무의 꿈을 이룰 잎-부터 알아본다. 하지만 그 나무가 자라 재목으로 쓰이며 잘라진다. 어찌 보면 죽임이다. 그런대도 나무는 뿌리가 죽지 않는 한 생명을 지속하며 포기하지 않고 계속 떡잎을 띄운다. 재목으로 쓰일 꿈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도 될 성 부른 떡잎이 있고, 성장해서 이름을 빛내기도 -꼭 마무리를 못해 비참한 역사를 남기기도 하지만-한다. 우리 같은 무지렁이들이야 마무리가 어떻든 신경 쓰는 사람 없지만 그래도 각자의 소중하고 독특한 인생의 마무리는 피해갈 수 없지 싶다. 그것을 보고 꿈을 키우며 작게는 자식이 이웃이, 크게는 사회가 성장하기 때문이다.
우리 같은 사람도 이럴진대 사회에 제 나름대로 혹은 타인의 인정으로 덕망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특히 대통령 후보들-은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타인의 귀감이 되어야할 것이다. 그렇지 못하고 혼란을 조장하고, 절망을 안겨준다면 그 죄(?)를 씻기 어려울 것이다. 어찌 완벽하게 살겠냐마는 그래도 좀 민중을 두려워하고, 신중하게 진정성 있게 말하고 행동하면 안 되는가. 민중은 눈도 없고 귀도 없는 청맹과니로 생각하고 함부로 말을 뱉어내고 행동한다면 여기에서 무슨 꿈을 꿀 수 있겠는가.
떡잎도 틔울 좋은 땅이 있어야 하는 데 대다수의 민중들에게는 없다. 그러나 자신들은 떡잎을 틔울 토양을 따로 갖고 있다고, 아니 없다면 만들 수 있다고 부추기는 무리들이 있다. 바로 자본-돈-을 가진 자들이니 그들은 돈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돈을 벌어야 이런 멋진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무차별적인 광고에 맥없이 무너지며, 벌면 벌수록 더 빚을 지게 되는 기막힌 상황을 만들면서 그들의 손발이 되어간다. 우리가 받는 월급으로는 우리가 버는 돈으로는 그들이 광고하는 꿈 같이 폼 나는 세상-사실 그런 세상은 실재하지 않는 허구다-을 살 수 없다.
한강뷰가 펼쳐지는 아파트에 살지 않아도, 고급 승용차에 스마트 워치를 차지 않아도, 화려하고 비싼 옷을 걸치지 않아도, 맛있다는 것 방방곡곡 쫓아다니며 먹방하지 않아도, 야자수 밑에서 사진 찍어 SNS나 유튜브에 올리지 않아도, 얼굴이 백옥 같지 않아도, 몸매가 날씬하지 않아도, 근육이 우락부락 하지 않아도 사랑만 있다면 꿈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사랑이 밥을 먹여주지는-돈을 벌게 해 주지는-못하지만 기쁨과 행복은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는 여러 가지 이유 중에 하나가 행복 속에서 기쁨을 누리는 것이 아니던가. 돈을 몽땅 벌고도 - 성공하고도 -기쁘거나 행복하지 않다면 돈을 억수로 버는, 성공이라는 꿈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돈이 성공이 꿈이 아니라, 사랑의 완성이 꿈이라면 그 사랑을 위해 날마다 설레며 기쁨으로 살지 않겠는가?
인간은 꿈이 있어야 산다. 그렇다. 그런데 그 꿈은 어디서 생기는가? 맨땅에 머리 박는다고-뭘 좋아하는지, 하고 싶어 하는지 백지 상태에서 스스로 생각해서 이것은 내 꿈이야 한다고- 떠오르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누군가는 꿈은 빌려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 앞을 살아간 사람들의 발자취를 보고 감동한 그 삶을 내 꿈으로 가져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꿈마저도 돈 있는 자들이 인생의 가치를 물질적 풍요에만 맞춰 부풀려 만들어 놓은 테두리-폼 나는 인생-를 벗어나지 못한다. 꿈조차도 자본가들이 쳐 놓은 그물망이라면 참으로 서글프지 않은가.
꿈이 없다고 못사는 것은 아니다. 내 맘이 이끄는 대로 살면 되는 것이지 내 인생을 왜 남들이 인정하고 평가해주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공동체에 속해 살면서 타인에게 해 끼치지 않으려 애쓰고, 때로는 협력하며 상생하려는 마음으로 살면 되지 않는가. 얼마나 더 위대한 사고를 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인가.
꿈을 이루기 위한 목표가 틀렸다면 수정해야 한다. 꿈을 고친다고 큰일 나는 것이 아니며, 설령 꿈이 없더라도 인생을 망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부 열심히 하고, 진득하게 직장생활하고 한우물만 파라고 한 것은 한국전쟁 후 폐허가 되어 보릿고개를 넘던 그 때 상황을 벗어나려는 임시방편이었는데 그것이 아직도 살아남아 우리의 자유로운 인생의 발목을 잡고 있지는 않은지. 기성세대들의 검증되지 않은 선입견과 편견과 독선이 지금 젊은 세대들의 부푼 꿈들을 도려내고, 돈 가진 자들이 부려먹기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라.
꿈같은 꿈을 꾸지도, 빌려오지도 마라. 돈 가진 자들이 광고로 보여주는 헛된 꿈같은 꿈을. 지금 이 순간 먹고 살기 위해 애쓰고 있는 노동에 당당하게 힘을 쏟으라. 그리고 남은 시간에 자신의 내면을 설레게 하고, 실행하면 때로 힘들기도 하지만 재밌고 기쁜 일-먹고 살기 위해 힘들지만 어쩔 수 없이 하는 노동과는 다른-이나 취미 또는 놀이를 즐기라. 또 남은 시간이 있거든 자유와 평화 생명과 사랑이 넘치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약간의 용기를 내어 힘-연대와 온정-을 쏟으라. 이런 소박한 꿈을 꾸며 살아도 된다. 이렇게 살아도 된다. 정말 이렇게 살아도 된다.
강태호(참여자치군산시민연대 대표)
꿈같은 꿈은 꾸지도 말라
[사진출처-신현민, 월명호수 나무의 여름과 겨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대통령 후보들이 연일 바쁘게 지역으로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 각계각층 직업인들을 만날 때마다 입만 열면 대한민국의 꿈-미래의 비전-을 이야기하고, 그 지역 민중의 삶을 때깔 나게 해주겠다고 공약(꼭 지키겠다는 공공의 약속인데 당선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실행이 어렵다고 축소하거나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헛된 약속이 되지 않기를)을 쏟아내고 있다.
내 꿈(그때는 직업-의사, 교사 변호사, 검사, 판사 등-이 꿈인 줄 알았다. 그 직업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가 어떻게 살 것인가가 꿈이란다. 그러면 어떻고 이러면 어떤가, 아무튼.)은 시시때때로 변했고 지금도 변하고 있다. 중학교 때는 범인 잡는 형사였다가, 이소룡의 무술영화를 보고는 무도인을, 권투영화 "록키"를 보고는 감독을 꿈꾸었다. 한낱 치기어린 청춘의 꿈이었지만 흉내 내어보는 나의 열정까지 막아내지는 못했다.
독서에 취미를 붙이면서, 신춘문예 당선을 꿈꾸며 시와 소설을 습작하는 문학도-인간을 알려면 철학을 해야 한다는 교수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철학과를 택했다. 문학은 인간을 탐구하는 것이라 위안 삼으며- 이기도 했다. 아직도 문학도의 길은 진행 중인데 다음의 벽-필사의 각오와 의지-을 만나 좌절하기 일보 직전이다.
치밀한 준비와 상상력, 작가정신과 인내와 끈기 없이는 단 한 줄도 잡아낼 수 없는 것이 소설쓰기의 어려움이자 기쁨이라고 말하는 글 감옥에 빠진 어느 소설가(황홀한 글 감옥/조정래/참언론 시사인북/2014)의 말마따나 나는 소설가가 되기는 영 글렀다.
사물과 현상을 대하는 따뜻한 시선과 꿰뚫어 보는 능력 그리고 그 느낌을 문장으로 잡아내는 섬세함이 없으면 시인이 될 수 없다. 거기다 목숨까지 걸라하는 시인(목숨을 걸고/이광웅/금강하구둑 시비에 새겨져 있는 육필시)도 있나니 말해무엇하리. 그러나 어떠랴. 나는 그렇게 시와 소설을 쓰지는 못하지만 심심찮게 가족에게 보여주는 짧은 글-내 생각에는 시-을 쓰고 있고, 지금 이렇게나마 시민연대 지면을 빌어 칼럼-내 생각에는 소설-을 쓰는 데 만족한다.
될 성부른 나무 떡잎-나무의 꿈을 이룰 잎-부터 알아본다. 하지만 그 나무가 자라 재목으로 쓰이며 잘라진다. 어찌 보면 죽임이다. 그런대도 나무는 뿌리가 죽지 않는 한 생명을 지속하며 포기하지 않고 계속 떡잎을 띄운다. 재목으로 쓰일 꿈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도 될 성 부른 떡잎이 있고, 성장해서 이름을 빛내기도 -꼭 마무리를 못해 비참한 역사를 남기기도 하지만-한다. 우리 같은 무지렁이들이야 마무리가 어떻든 신경 쓰는 사람 없지만 그래도 각자의 소중하고 독특한 인생의 마무리는 피해갈 수 없지 싶다. 그것을 보고 꿈을 키우며 작게는 자식이 이웃이, 크게는 사회가 성장하기 때문이다.
우리 같은 사람도 이럴진대 사회에 제 나름대로 혹은 타인의 인정으로 덕망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특히 대통령 후보들-은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타인의 귀감이 되어야할 것이다. 그렇지 못하고 혼란을 조장하고, 절망을 안겨준다면 그 죄(?)를 씻기 어려울 것이다. 어찌 완벽하게 살겠냐마는 그래도 좀 민중을 두려워하고, 신중하게 진정성 있게 말하고 행동하면 안 되는가. 민중은 눈도 없고 귀도 없는 청맹과니로 생각하고 함부로 말을 뱉어내고 행동한다면 여기에서 무슨 꿈을 꿀 수 있겠는가.
떡잎도 틔울 좋은 땅이 있어야 하는 데 대다수의 민중들에게는 없다. 그러나 자신들은 떡잎을 틔울 토양을 따로 갖고 있다고, 아니 없다면 만들 수 있다고 부추기는 무리들이 있다. 바로 자본-돈-을 가진 자들이니 그들은 돈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돈을 벌어야 이런 멋진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무차별적인 광고에 맥없이 무너지며, 벌면 벌수록 더 빚을 지게 되는 기막힌 상황을 만들면서 그들의 손발이 되어간다. 우리가 받는 월급으로는 우리가 버는 돈으로는 그들이 광고하는 꿈 같이 폼 나는 세상-사실 그런 세상은 실재하지 않는 허구다-을 살 수 없다.
한강뷰가 펼쳐지는 아파트에 살지 않아도, 고급 승용차에 스마트 워치를 차지 않아도, 화려하고 비싼 옷을 걸치지 않아도, 맛있다는 것 방방곡곡 쫓아다니며 먹방하지 않아도, 야자수 밑에서 사진 찍어 SNS나 유튜브에 올리지 않아도, 얼굴이 백옥 같지 않아도, 몸매가 날씬하지 않아도, 근육이 우락부락 하지 않아도 사랑만 있다면 꿈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사랑이 밥을 먹여주지는-돈을 벌게 해 주지는-못하지만 기쁨과 행복은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는 여러 가지 이유 중에 하나가 행복 속에서 기쁨을 누리는 것이 아니던가. 돈을 몽땅 벌고도 - 성공하고도 -기쁘거나 행복하지 않다면 돈을 억수로 버는, 성공이라는 꿈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돈이 성공이 꿈이 아니라, 사랑의 완성이 꿈이라면 그 사랑을 위해 날마다 설레며 기쁨으로 살지 않겠는가?
인간은 꿈이 있어야 산다. 그렇다. 그런데 그 꿈은 어디서 생기는가? 맨땅에 머리 박는다고-뭘 좋아하는지, 하고 싶어 하는지 백지 상태에서 스스로 생각해서 이것은 내 꿈이야 한다고- 떠오르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누군가는 꿈은 빌려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 앞을 살아간 사람들의 발자취를 보고 감동한 그 삶을 내 꿈으로 가져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꿈마저도 돈 있는 자들이 인생의 가치를 물질적 풍요에만 맞춰 부풀려 만들어 놓은 테두리-폼 나는 인생-를 벗어나지 못한다. 꿈조차도 자본가들이 쳐 놓은 그물망이라면 참으로 서글프지 않은가.
꿈이 없다고 못사는 것은 아니다. 내 맘이 이끄는 대로 살면 되는 것이지 내 인생을 왜 남들이 인정하고 평가해주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공동체에 속해 살면서 타인에게 해 끼치지 않으려 애쓰고, 때로는 협력하며 상생하려는 마음으로 살면 되지 않는가. 얼마나 더 위대한 사고를 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인가.
꿈을 이루기 위한 목표가 틀렸다면 수정해야 한다. 꿈을 고친다고 큰일 나는 것이 아니며, 설령 꿈이 없더라도 인생을 망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부 열심히 하고, 진득하게 직장생활하고 한우물만 파라고 한 것은 한국전쟁 후 폐허가 되어 보릿고개를 넘던 그 때 상황을 벗어나려는 임시방편이었는데 그것이 아직도 살아남아 우리의 자유로운 인생의 발목을 잡고 있지는 않은지. 기성세대들의 검증되지 않은 선입견과 편견과 독선이 지금 젊은 세대들의 부푼 꿈들을 도려내고, 돈 가진 자들이 부려먹기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라.
꿈같은 꿈을 꾸지도, 빌려오지도 마라. 돈 가진 자들이 광고로 보여주는 헛된 꿈같은 꿈을. 지금 이 순간 먹고 살기 위해 애쓰고 있는 노동에 당당하게 힘을 쏟으라. 그리고 남은 시간에 자신의 내면을 설레게 하고, 실행하면 때로 힘들기도 하지만 재밌고 기쁜 일-먹고 살기 위해 힘들지만 어쩔 수 없이 하는 노동과는 다른-이나 취미 또는 놀이를 즐기라. 또 남은 시간이 있거든 자유와 평화 생명과 사랑이 넘치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약간의 용기를 내어 힘-연대와 온정-을 쏟으라. 이런 소박한 꿈을 꾸며 살아도 된다. 이렇게 살아도 된다. 정말 이렇게 살아도 된다.
강태호(참여자치군산시민연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