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절과 변화
변절 : 사전적 정의는 “절개나 지조를 지키지 않고 배반함.” - 자신의 신념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그 신념과 반대되는 무리에 뒤섞여 자신의 이익만을 쫒아 가려는 차마 눈 뜨고 하늘을 볼 수 없는 부끄러운 행위.
변화 : 사전적 정의는 “사물의 모양이나 성질이 바뀌어 달라짐.” -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념에 의문을 품고, 성찰과 사색과 실천 그리고 경험과 훈련을 통해 자신의 신념을 수정하거나 확장하거나 버리기도 하면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과정.
"박근혜 탄핵"에서 "박근혜 사면"으로
국민의 촛불혁명으로 탄핵 당하고, 구국정농단과 무능 때문에 권좌에서 내려와, 감옥에 간 박근혜 전 대통령이 그 촛불혁명에 힘입어 대통령이 된 문재인 대통령의 사면으로 석방된다. 아직도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주변 탓만 하는 그를, 국민 여론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대통령 임기만료 몇 개월을 앞두고 풀어준단다. 변절인가? 변화인가? 아니면 선심인가? 무슨 정치적 계산을 한 꿍꿍이인지는 잘 모르겠다. 4년 8개월이라는 제법 긴 기간 동안의 수감생활로 육체와 정신이 망가져 있는 모습을 인간적으로 불쌍히 여긴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이 지지부진한 현 시점에서 개인적으로도, 시민연대도, 사회 곳곳에서도 사면을 반대하지만 사면을 돌이키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 사면이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저지른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책임지며 남은 삶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막가는 대선이라는 표현이 딱 맞다. 하루가 멀다 하고 유력한 대선후보 두 명에게 구설수가 끊이지 않으니 말이다. 한 후보는 의혹에 몰려 있는 "대장동 사건"관련 핵심 인물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고 있는 지경이고, 다른 한 후보는 심지어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은 자유의 의미가 뭔지 잘 모른다고 비하하더니, 인간 개개인의 가치는 지구보다 소중하다며 자연법을 들먹인다.
막가는 것은 대선후보 뿐이 아니다. 사회적으로 업적을 쌓으면 모든 것이 묵인되는 것인지, 국회의원들은 불체포 특권이 있어서 함부로 말해도 되는지, 진실여부는 개의치 않고 유튜브 시청자 수와 구독수를 올려 인기를 끌고 돈만 벌면 되는지, 만났다가 의견이 틀리면 두드려 패고, 사사건건 트집 잡는 등쌀에 못 이겨 헤어지면 스토킹하거나 수틀리면 쫓아가서 가족이고 뭐고 다 죽이면 되는지, 위층이 시끄럽다고 칼부림하거나 심지어 살인을 해도 되는지, 앞차가 늦게 간다고 고속도로 상에서 보복운전을 하거나 그것도 모자라 차를 세우고 끌어내리는 망발을 해도 되는지, 도대체 자신 앞을 가로 막거나, 먼저 가는 꼴을 못보고, 자신의 의견에 토를 달거나, 자신의 이익이나 감정을 상하게 하면 분노조절장애를 앓는 사람들처럼 함부로 폭력을 행사하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지금 스스로를 돌아보고, 나와 다른 타인을 배려하고, 인정하고, 존중하는 자세로 변화하지 않으면 큰일이지 싶다.
한쪽은 자식이 도박으로, 성매매 의혹으로 구설수에 올라 있다. 도박을 하다 한 천만원 잃은 것같고 성매매는 안 했다고 하니 자식의 말을 믿어야지 어떡하겠느냐는 식으로 변명을 한다. 다른 한쪽은 아내가 직업을 구할 때마다 줄줄이 경력조작을 하고나서 하는 말이 가관이다. 남에게 잘 보이려는 인간의 마음이라고 무엇이 잘못됐다고 그러느냐는 듯이 항변한다. 양쪽 다 반성한다고 했으니 그만 불신하고, 자신을 뽑아 달라고 대선행보를 야심차게 내딛는다. 한쪽은 코로나 19의 여파로 최대의 손해를 입은 중소영세상인들의 아픔을 위로한다며 100만원 우선 지급에 중소기업 증진정책을 내놓고, 다른 한쪽은 종전선언을 하고 군비축소와 단계적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현 정부의 행보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군부대를 방문하여 북한을 적으로 지칭하며, 월급을 올려 준단다. 돈으로 해결하려는 근시안적 선심성 공약은 두 후보가 같다. 당선만 되면 그만이고, 당선되면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오만한 태도를 버리고, 진심으로 국민을 섬기는 자세로 변화하는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한쪽은 남편의 구설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배우자가 열심히 선거운동을 돕는데, 다른 한쪽 선대총괄본부장은 후보의 배우자가 꼭 선거운동을 할 필요는 없다고, 등판할 필요가 없다고 못을 박는다. 대통령을 뽑는 것이지 영부인을 뽑는 것이 아니라는 해괴망측한 논리를 내세우기도 하며, 후보자는 아예 배우자 등판 계획에 없었다고 말한다. 혹시 미래의 영부인이 즉흥적으로 어떻게 행동할지 몰라 미리 고삐를 채우려는 것은 아닌지. 인생을 완벽하게 살아온 사람은 없고, 완벽하게 살 수도 없다.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을 뿐이다. 사람을 만나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라는 어느 시인의 말이 아니더라도,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는데 동의한다면 후보자의 어마어마한(?) 역사를 알아야, 공과를 따져보아야, 주인 된 자로서 주인을 섬길 머슴- 대통령-을 뽑을 것 아닌가. 변화의 여지가 없는 사람보다는 자신의 흠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고개를 숙이고 변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사람에게 표를 던지든 말든 할 것이 아닌가.
여성의 인권과 평등을 위해 싸워온 페미니스트 여성이 범죄와 싸웠고, 여성의 안전만은 약속하겠다는 어떤 후보의 말을 듣고, 그 당에 둥지를 틀었다. 그 보수당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아 어제까지 자신이 호되게 날선 비판을 펼쳐 왔는데 하루아침에 그 당으로 돌아섰으니, 참담한 변절이다.
정치에는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고, 자신의 이익만 좇는 이기주의자만 있는가 보다. 자신의 이익에 맞지 않으면 배신하는, 이익이 생긴다 싶으면 변절하는 배신자, 변절자만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전혀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보니, 인간 본성에도 이기적 유전자가 우세하게 작동하는 것은 아닌지 마음이 아프다. 유전자가 진화하는 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몸은 그렇다 해도, 내 머리로 생각하고 내 삶의 가치를 벼리어주는 정신까지 그런다면 깨달음을 얻어 변화할 수 없으니 절망스럽지 않은가?
늦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부터 변화하고자 마음먹고 시작하면 된다. 어디 그리 빨리 변화되겠는가마는 조금씩은 나아지지 않겠는가. 오늘이 어제 죽은 사람이 그토록 살고 싶어 하는 내일이라는데 함부로 헛되이 살 수 있겠는가. 행복이 별 것인가. 자유가 별 것인가. 어제보다 조금 더 웃고, 조금 더 생각하고, 조금 더 여유롭고, 당당하게 살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오미크론으로 변종된 코로나 바이러스가 다시 기승을 부려도 우리의 연대는 멈출 수 없다. 2022년 1월 13일(목)~14일(금) 오후 9시, 얼굴 마주보고(대면), 혹은 마음으로 마주보는(비대면) 군산시민연대 총회에 참석하는 것이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변화된 삶을 살아가려는 힘찬 발걸음 아니겠는가.
사랑하는 회원 여러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밝아오는 새해 행복 많이 누리시길 바랍니다.
강태호(참여자치군산시민연대 대표)
변절과 변화
변절 : 사전적 정의는 “절개나 지조를 지키지 않고 배반함.” - 자신의 신념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그 신념과 반대되는 무리에 뒤섞여 자신의 이익만을 쫒아 가려는 차마 눈 뜨고 하늘을 볼 수 없는 부끄러운 행위.
변화 : 사전적 정의는 “사물의 모양이나 성질이 바뀌어 달라짐.” -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념에 의문을 품고, 성찰과 사색과 실천 그리고 경험과 훈련을 통해 자신의 신념을 수정하거나 확장하거나 버리기도 하면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과정.
"박근혜 탄핵"에서 "박근혜 사면"으로
국민의 촛불혁명으로 탄핵 당하고, 구국정농단과 무능 때문에 권좌에서 내려와, 감옥에 간 박근혜 전 대통령이 그 촛불혁명에 힘입어 대통령이 된 문재인 대통령의 사면으로 석방된다. 아직도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주변 탓만 하는 그를, 국민 여론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대통령 임기만료 몇 개월을 앞두고 풀어준단다. 변절인가? 변화인가? 아니면 선심인가? 무슨 정치적 계산을 한 꿍꿍이인지는 잘 모르겠다. 4년 8개월이라는 제법 긴 기간 동안의 수감생활로 육체와 정신이 망가져 있는 모습을 인간적으로 불쌍히 여긴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이 지지부진한 현 시점에서 개인적으로도, 시민연대도, 사회 곳곳에서도 사면을 반대하지만 사면을 돌이키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 사면이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저지른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책임지며 남은 삶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막가는 대선이라는 표현이 딱 맞다. 하루가 멀다 하고 유력한 대선후보 두 명에게 구설수가 끊이지 않으니 말이다. 한 후보는 의혹에 몰려 있는 "대장동 사건"관련 핵심 인물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고 있는 지경이고, 다른 한 후보는 심지어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은 자유의 의미가 뭔지 잘 모른다고 비하하더니, 인간 개개인의 가치는 지구보다 소중하다며 자연법을 들먹인다.
막가는 것은 대선후보 뿐이 아니다. 사회적으로 업적을 쌓으면 모든 것이 묵인되는 것인지, 국회의원들은 불체포 특권이 있어서 함부로 말해도 되는지, 진실여부는 개의치 않고 유튜브 시청자 수와 구독수를 올려 인기를 끌고 돈만 벌면 되는지, 만났다가 의견이 틀리면 두드려 패고, 사사건건 트집 잡는 등쌀에 못 이겨 헤어지면 스토킹하거나 수틀리면 쫓아가서 가족이고 뭐고 다 죽이면 되는지, 위층이 시끄럽다고 칼부림하거나 심지어 살인을 해도 되는지, 앞차가 늦게 간다고 고속도로 상에서 보복운전을 하거나 그것도 모자라 차를 세우고 끌어내리는 망발을 해도 되는지, 도대체 자신 앞을 가로 막거나, 먼저 가는 꼴을 못보고, 자신의 의견에 토를 달거나, 자신의 이익이나 감정을 상하게 하면 분노조절장애를 앓는 사람들처럼 함부로 폭력을 행사하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지금 스스로를 돌아보고, 나와 다른 타인을 배려하고, 인정하고, 존중하는 자세로 변화하지 않으면 큰일이지 싶다.
한쪽은 자식이 도박으로, 성매매 의혹으로 구설수에 올라 있다. 도박을 하다 한 천만원 잃은 것같고 성매매는 안 했다고 하니 자식의 말을 믿어야지 어떡하겠느냐는 식으로 변명을 한다. 다른 한쪽은 아내가 직업을 구할 때마다 줄줄이 경력조작을 하고나서 하는 말이 가관이다. 남에게 잘 보이려는 인간의 마음이라고 무엇이 잘못됐다고 그러느냐는 듯이 항변한다. 양쪽 다 반성한다고 했으니 그만 불신하고, 자신을 뽑아 달라고 대선행보를 야심차게 내딛는다. 한쪽은 코로나 19의 여파로 최대의 손해를 입은 중소영세상인들의 아픔을 위로한다며 100만원 우선 지급에 중소기업 증진정책을 내놓고, 다른 한쪽은 종전선언을 하고 군비축소와 단계적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현 정부의 행보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군부대를 방문하여 북한을 적으로 지칭하며, 월급을 올려 준단다. 돈으로 해결하려는 근시안적 선심성 공약은 두 후보가 같다. 당선만 되면 그만이고, 당선되면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오만한 태도를 버리고, 진심으로 국민을 섬기는 자세로 변화하는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한쪽은 남편의 구설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배우자가 열심히 선거운동을 돕는데, 다른 한쪽 선대총괄본부장은 후보의 배우자가 꼭 선거운동을 할 필요는 없다고, 등판할 필요가 없다고 못을 박는다. 대통령을 뽑는 것이지 영부인을 뽑는 것이 아니라는 해괴망측한 논리를 내세우기도 하며, 후보자는 아예 배우자 등판 계획에 없었다고 말한다. 혹시 미래의 영부인이 즉흥적으로 어떻게 행동할지 몰라 미리 고삐를 채우려는 것은 아닌지. 인생을 완벽하게 살아온 사람은 없고, 완벽하게 살 수도 없다.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을 뿐이다. 사람을 만나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라는 어느 시인의 말이 아니더라도,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는데 동의한다면 후보자의 어마어마한(?) 역사를 알아야, 공과를 따져보아야, 주인 된 자로서 주인을 섬길 머슴- 대통령-을 뽑을 것 아닌가. 변화의 여지가 없는 사람보다는 자신의 흠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고개를 숙이고 변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사람에게 표를 던지든 말든 할 것이 아닌가.
여성의 인권과 평등을 위해 싸워온 페미니스트 여성이 범죄와 싸웠고, 여성의 안전만은 약속하겠다는 어떤 후보의 말을 듣고, 그 당에 둥지를 틀었다. 그 보수당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아 어제까지 자신이 호되게 날선 비판을 펼쳐 왔는데 하루아침에 그 당으로 돌아섰으니, 참담한 변절이다.
정치에는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고, 자신의 이익만 좇는 이기주의자만 있는가 보다. 자신의 이익에 맞지 않으면 배신하는, 이익이 생긴다 싶으면 변절하는 배신자, 변절자만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전혀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보니, 인간 본성에도 이기적 유전자가 우세하게 작동하는 것은 아닌지 마음이 아프다. 유전자가 진화하는 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몸은 그렇다 해도, 내 머리로 생각하고 내 삶의 가치를 벼리어주는 정신까지 그런다면 깨달음을 얻어 변화할 수 없으니 절망스럽지 않은가?
늦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부터 변화하고자 마음먹고 시작하면 된다. 어디 그리 빨리 변화되겠는가마는 조금씩은 나아지지 않겠는가. 오늘이 어제 죽은 사람이 그토록 살고 싶어 하는 내일이라는데 함부로 헛되이 살 수 있겠는가. 행복이 별 것인가. 자유가 별 것인가. 어제보다 조금 더 웃고, 조금 더 생각하고, 조금 더 여유롭고, 당당하게 살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오미크론으로 변종된 코로나 바이러스가 다시 기승을 부려도 우리의 연대는 멈출 수 없다. 2022년 1월 13일(목)~14일(금) 오후 9시, 얼굴 마주보고(대면), 혹은 마음으로 마주보는(비대면) 군산시민연대 총회에 참석하는 것이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변화된 삶을 살아가려는 힘찬 발걸음 아니겠는가.
사랑하는 회원 여러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밝아오는 새해 행복 많이 누리시길 바랍니다.
강태호(참여자치군산시민연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