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잇값 하기

군산시민연대
2021-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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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국정농단의 고리를 촛불혁명으로 끊어내고 등장한 문재인 정부가 이제 곧 막을 내린다. 여기저기서 후보들이 대선 출사표를 던지며 얼굴 알리는 작업이 한창이다. 매일 2천 명 가까이 코로나 확진 환자가 나와도 대선 시계는 돌아간다. 지구의 식량 총생산량은 70억 인구를 살리고도 남아도는데, 지구의 절반은 못 먹어서 굶주린다. 한쪽에서는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더러운 물로 목을 축이다가 질병을 앓고 죽어가고, 다른 한쪽에서는 먹고살 만한 사람들이 내다 버린 플라스틱으로 바다에는 떠다니는 섬이 생기며, 정화하지 않고 마구 내다 버리는 생활 하수로 인해 마지막 생명의 젖줄 바다는 빠른 속도로 오염되어간다. 어이없게도 바다 생물들은 그 조각에 몸을 찔리고, 호흡이 막혀 쩔쩔매고 살다가 인간에게 잡혀서 인간의 식탁에 오른다. 인간이 방관하거나 저지른 무책임한 행위들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만다. 무분별한 탄소배출로 지구 곳곳에 기상이변이 속출해 물 폭탄과 산사태, 폭설이 시도 때도 없이 강타하지만, 지구는 자전과 공전을 멈추지 않고, 그 위에 사는 존재들도 멈추지 않고 살아간다. 지구가 이렇게 된 것이, 세상을 이렇게 만들어 가고 있는  주범이 근래 100년 전쯤 세상에 먼저 온 사람들, 죽은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지금의 나이 먹은 사람들이다. ( 최근 100년 동안  지구를 말아 먹은 행태가 유사 이래 100년 전까지 인간이 지구에 저지른 모든 일의 양과 비슷하다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흐르는 시간을 멈추게 할 수도 빠르게 흘러가게 할 수도 없다. 시계가 정해 놓은 시분초의 속도만큼 시간이 흐른다. 길이도 끝도 없는 시간을 인간이 과학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하루를, 한 달을, 일 년을 만들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아간다. 흐르는 시간 위에 인간이 서 있는 것인지, 아니면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만 시간이 흐르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제의 태양과 오늘의 태양은 다르다고, 오늘의 24시간은 어제의 24시간과 다르다고 위안 삼으며 인간은 살아간다. 인간은 생명을 가지고 있어서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죽기 전까지는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다.

 

시간을 잴 수 있게 되었으니 젊음도 늙음도 생겨난다. 먼저 난 사람이 나중 난 사람의 선배라는 혹은 선생이라는 서열이 정해진다. 그러다가 나이 먹은 사람(어른)이 공식적으로 나이 적은 사람(젊은이)을 함부로 대해도 되는 듯한 문화가 자리 잡게 된다. 사실 서열이 정해지고, 존경을 받고, 무게를 잡으려면 나잇값을 해야 하는데 나부터도 도통 나잇값을 못 하고 산다. 오히려 젊은이보다 못한 어른들이 더 많다. 내가 대접받으려면 먼저 남을 대접해야 한다는 불문율은 사라진 지 오래다. 젊은이들을 나이 적은 사람이 아닌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인간으로 대해야 한다. 활기차고 변화무쌍하고 도전적인 젊은이의 특성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그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먼저 인식하고, 편견 없이 그들의 말과 행동을 보아야 한다. 그러나 어른들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젊은이들을 철없고, 무지하고, 무책임한 사람으로 판단해버리고 자신들이 그려놓은 인생에 맞추어 살라고 강요하다시피 한다.

 

'어른답게', '선생답게', '학생답게', '아이답게', '남자답게', '여자답게'라는 말은 쓰지 않으면 좋겠다. '~답게'라는 쓰임에는  어떤 기준을 두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 기준은 이미 선입견과 편견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답게'라는 말을 빼고 통틀어 '인간으로서'라는 말을 쓰면 어떨까 싶다. 인간도 동물인데 다른 동물들이 들으면 무시당했다고 할지 모르겠다. 다른 동물들과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구분하려는 것이니 오해 말자. 차라리 '존재자로서, 라고 쓸까 보다.

 

기본적인 질서를 지키는 수준을 보아도 어른은 할 말이 없다. 음주운전에, 무단횡단은 자랑스러운(?) 습관이요, 공공장소에서 고성방가는 다반사다. 그 모습으로 살면서 젊은이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어른들은 사정이 있고, 나이 먹었으니까 해도 되고, 젊은이들은 아직 어리니까 잘 지키고, 어른들의 행태를 이해하라고 말할 것인가? 거의 모든 범죄는 사실 나이 먹은 어른들이 저지른다. 날마다 뉴스를 장식하는 교통사고에 폭력에 사람을 죽이는 일까지 어느 것 하나 나이 먹은 어른이 빠지는 것을 볼 수가 없다. 세계 어느 나라를 보아도 나이 먹은 어른들이 대통령이요, 국회의원이요,  장·차관이요, 고급공무원이요, 회사의 회장이요, 하다못해 팀장이다. 자리가 그렇게 사람을 만드는 것인지는 몰라도, 권위의식은 하늘을 찌르고, 온갖 허세와 술수 부리며, 법이라는 법은 교묘히 어기고, 호의호식하면서 갑질을 하는 경우를 어디 한두 번 보았는가. (간혹 그렇지 않은 어른과 젊은이가 있지만 말이다.)나이가 어려서 몰라서 안 저지르는 것이 아니다. 인간으로서 저지르면 안 되기 때문에 저지르지 않는 것이다.

 

어른이라 해서 무조건 존경받고 대우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어른으로서 존경받고 대우받게 처신하고 행동해야 하지 않는가. 말문이 막히거나 창피당할 것 같으면, 말끝마다 '나이 몇 살이냐며, 어린것이 싹수없게 하며' 누르지 말고, 말이다. (정말 부끄러운 줄도 모르게 나도 예전에는 그렇게 살아왔다. 용서 바란다. 요즈음은 반성하며 새로운 시선으로 젊은이를 보며 살아가고자 한다.) 잘잘못을 따지는데 나이가 왜 끼어들어 당치도 않은 힘을 휘두르는가. 벌어진 상황을 이모저모 놓아가며, 전과 후를 잘 따져, 잘못된 사실을  밝혀내면 되는 것이고, 서로 수긍하고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을 지면 되는 것이다.

 

대선주자 모두가 나이 먹은 어른이다. 나잇값을 해야 한다. 젊은이들이 지켜보고 있고, 그들의 표가 대선의 향방과 당락을 결정할 것이다. 함부로 상대방을 비방하거나 헐뜯지 말라. 젊은이들이 보고 배울까 무섭다.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지 말고, 정말 인간(국민)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남은 대선 기간 곰곰이 생각하고 실천 가능한 대안을 만들어 내주길 바란다. 젊은이들도 이 과정을 지켜보고, 거울삼아 그들의 미래를 용기 있게 개척할 수 있게 말이다.

 

"아들의 삶은 아버지의 삶에 대한 처벌이다.-관계의 물리학/림태주/웅진지식하우스/2018“ 라는 말이 나에게도 아프게 다가온다. 림태주는 위의 책에 자신을 되돌아보는 문구로 사용한다며, 미국 시인 윌리스 스티븐스가 한 말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젊은이의 삶이 나이 든 어른의 삶을 그대로 본떠 나이 든 사람의 눈 앞에 펼쳐지며 가슴 쥐어뜯는 처벌이 되는 일이 벌어진다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앞으로 젊은이의 삶이 나이 든 사람의 처벌이 아닌 뿌듯함이 될 수 있게 나이 든 사람이 나잇값을 하며 살아보자. 나이 먹어가는 것이 벽창호가 되어 잘한 것도 없으면서 내 위신만 세우고 대놓고 대접받으려고 늙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타인을 인정하고, 존중하고, 환대하며 조금씩 성숙해 가는 길이었으면 좋겠다. 어느 노래 가사처럼 말이다. "우린 늙어 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강태호(참여자치군산시민연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