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어처구니없는 일(2020년 7월)

군산시민연대
2021-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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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어처구니없는 일





 2018년 남북정상회담, 4.27 판문점 선언의 상징이요, 대화와 통일의 마중물 역할을 하던  남북연락사무소가 폭파되었다. 신뢰를 저버린 대가치고는 너무나 크다. 통일이 폭파된 느낌이다. 코로나 19가 좀 잠잠해지면 착착 금강산 여행도 가고, 개성공단도 문을 열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시기에 참을 수 없는 존재들의 대북전단지 살포가 폭파를 낳고, 전쟁준비에 박차를 가하게 하니 한반도에 전운이 감돈다. 아무 생각 없이 뿌린 대북전단지가 이렇게 엄청난 사건을 불러 온다. 살포한 단체에게 경고하고 책임을 묻겠다는 제스처를 북으로 보냈지만 북은 콧방귀도 안 뀌고 폭파해버렸다. 게다가 대남전단지를 대량 만들어 살포하겠단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대북전단지 살포라는 - 구시대의 유물이라 여겨졌던 - 이 어처구니없는 일이 2020년에도 벌어진단 말인가. 우리 정부는 전단지 살포에 대한북한이 대응한 가혹한 처사에 유감을 표시했지만 영 개운치 않다.


 인간이란 자신이 세상에 태어난 참 이유가 무엇인지 그 의미를 찾아가는 존재요, 그 과정을 인생이라고 말한다. 인생은 늘 되돌릴 수 없는 시간적 사건이며 앞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사고하는 인간은 과거를 기억해내고 그 교훈으로 현재를 명랑하게 살 수 있는 무언가를 창조하기도 한다. 미래를 상상하며 현재의 고달픔을 이겨내기도 하는 지혜로운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지혜를 자신의 권력이나 명예를 위해 타인을 세뇌하고 억압하는 곳에 사용하기도 한다. 역사에 기록된 혹은 이야기로 전해지는 수많은 영웅들이나 악한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조금씩 어느 편에 서기도하며, 가치중립적으로 혹은 방관자로 남기도 한다. 그래도 결정적으로는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게 되고 그 길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선택하지 않아도 하나의 선택이 되기 때문이다. 양쪽에서 비난을 받기도 한다. 물론 더 거대한 힘이 되어 제3의 대안을 내올 수도 있다.


 비탈길에서 굴렀을 때 멈추려 힘을 쓰면 더 다친다. 몸이 구르는 대로 맡기다 보면 관성의 법칙이 멈추는 때가 온다. 그러면 오히려 말짱한 경우도 있다. 사소한 것이라도 무조건 믿고, 아무생각도 없이,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할 때 이런 엄청난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정말로 쏜다." "달콤한 인생"이라는 영화를 보며 느낀다. 처음에는 자잘한 (모범시민 주인공이 정리해고 당하고 파출소 담벼락에 오줌을 갈기는 일로, 조폭두목의 신임을 받고 있는 졸개가 두목의 애인을 따라다니는 남자친구를 용서해주었다는) 일로 시작해 방화로 살인으로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결국 파국에 이른다. 너무도 섬뜩했다. 그야말로 평범한 사람들이다. 선량한 마음을 가진 조폭의 졸개도 어찌 보면 그렇다.) 그 날, 그 상황에서, 그 순간의 기분을 잘못 다스리면, 생각 없이 행동하면 나의 정신을 지탱하고 있던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걷잡을 수 없는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인생의 참의미는 무엇일까? 인생의 목표는 자본주의 광고의 무차별 폭격에 정신을 빼앗겨서 무작정 돈만 벌어 부자가 되는 것일까? 아니면 인생이 주는 시련과 고난과 역경을 통해 나를 올곧게 세우고 나에게 놓인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 공부하고 노동하고 노는 것일까? 이번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를 계기로 깊이 있게 나를 성찰해보자. 무작정 살아갈 때 생기는 폐해는 아래와 같이 심각하다.


1. 의심하지 않는 신념 :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신념은 확실한가? 아니면 확실하다고 믿고 싶은 것인가? 나는 어떻게 이런 신념을 갖게 되었을까?”에 대해 의심하지 않고, 깊이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무언가에 맹신(盲信 :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않고 무작정 믿음)하게 되고, 혹세무민하는 자들의 꾐에 빠지거나, 사이비종교에 빠져 재물과 명예와 건강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을 수도 있다.


2. 생각하지 않는 행동 : 나의 신념이 아무리 옳을 지라도 상황에 따라 점검하고, 생각하고, 새로운 각오를 하지 않는다면 무언가에 누군가에 맹종(盲從 :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남이 시키는 대로 무턱대고 따름)하게 되고, 명령하면 복종하게 되며, 폭력적 집단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 생각하지 않으면 개인이나 집단이 권력으로 재물로, 잘못된 신념으로 타인과 집단의 자유를 억압하고 말살하여 꼭두각시로 만들려 하는 것을 눈치 챌 수 없다. 그리하여 내가 하는 행동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책임도 질 줄 모르게 된다.


3. 성찰하지 않는 존재 : 신념과 올바른 생각으로 행동한다 해도 때로 성찰하지 않으면 습관화 되어 맹동(盲動 : 아무 분별없이 망령되이 행동함)하게 된다. 신념과 생각은 올바른데 구시대의 악습과 인습과 통념, 관성에 의해서 구축된 습관과 문화가 인권침해 차별을 하는 갑질로 나타나 사회관계망에 악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신념과 생각과 자신을 때로 성찰하지 않으면 눈이 멀어 믿게 되고, 따르고, 행동하게 된다. 맹목(盲目 앞뒤를 가리거나 사리를 판단할 능력이 없는 상태를 이르는 말)적인 인간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아무리 눈을 부릅떠도 세상에 널려 있는 - 돈만 생각하고,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좋지 않은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사소하지만 치밀하고, 자극적인 유혹에도 무너지기가 쉽다. 한 번 사소한 일에 발을 디디면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는 것은 한 순간이라는 말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신념을 때로 점검하지 않으면 독선이 되고 아집이 되어 나를 해치게 된다. 정신과 육체를 분리하는데 성공한 데카르트조차도 의심에서 출발하지 않았던가. “의심하지 않는 진리는 진리가 아니다.” 라고도 한다. 생각하고 행동했으면 군부독재시절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수많은 폭력적인 조작 사건과 광주민중항쟁을 진압하려 했던 작전명 "화려한 휴가"는 - 같은 민족을 같은 인간을 명령 때문에 죽일 수 없다는 - 상명불복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지지부진한 4.16참사의 진상규명도 궤를 같이한다. 참사의 진상을 다루는 데 걸림돌이 어디 있는가? 누구의 눈치를 보는가? 진상을 가로막는 무리들에게 저항하고, 축소하려는 명령에 불복하라. 민중이 만들어 놓은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을 내실 있게, 용기 있게 해내야 한다. 그리하여 유가족의 아픔을 치유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아니 우리가 또 잊어버려 그런 사건이 다시 일어난 나면 조금은 좀 더 인간적으로 좀 더 생명 우선 정신으로 좀 더 정의롭게 사건을 수습하려 애쓰지 않겠는가. 


 지구상에 유일한 분단국인 대한민국(남한)과 북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북한)의 통일만큼 절실하고 소중한 일이 어디 있으랴. 애를 써서 통일의 물꼬를 트고, 다리를 놓고 있는데 - 더구나 코로나19로 세계가 어지러운데 - 무슨 생각으로 대북전단지를 뿌린단 말인가. 도대체 그 사람들은 어떤 신념과 생각을 가지고 행동한단 말인가? 어떻게 이렇게 맹목적일 수가 있는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을 동시대에 살고 있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 맞아들여야 한다. (한편으로는 서글프고 애처롭다. 그들의 생각과 표현 집회 결사의 자유를 존중하지만 그 자유를 빌미로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그들의 불의한 행동에는 맞서서 싸워야한다.) 인간이 소중한 만큼 자연 만물도 소중하고, 내 인격이 소중하고 고귀한 만큼  타인의 인격도 그러하다는 것을 알려면 깊이 성찰해야 한다. 나의 행동을 반성하고, 내면 깊숙이 들여다보는 자기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겨우 사람다운 사람으로  걸음마를 떼게 되는 것이다. 이제 인생을 살아가면서 덧붙여지는 여러 가지 덕목(배려, 존중, 이해, 소통, 자유, 평화, 사랑, 행복 등)들과 함께 타인을 움켜쥐고 짓밟는 것이 아닌, 나누고 돌보는 성숙한 존재로 거듭나보자.


강태호(참여자치군산시민연대 대표)


* 칼럼 제목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쓴 밀란 쿤데라의 책 이름에서 따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