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찾습니다.(2020년 8월)

군산시민연대
2021-05-04
조회수 437


사람을 찾습니다.

2020년 6월 26일 오전, 우리 어머니 조해운님이 9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슬하에 5남3녀를 두고, 어느 날 홀연히 일을 놓고 치매에 들었다. 자식의 이름도 얼굴도 모르고 십수년을 지내다 코로나19도 이겨내는 강건함을 보이더니 하늘의 부름은 어쩔 수 없는지라 이 날 눈을 감았다. 다시 한 번 지면을 빌어 조문과 함께 위로의 말씀을 전한, 오시지 못했지만 함께 애도를 표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어머님의 몸을 빌어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기적을 맛보고 있다.  어찌 감사하지 않으며, 어찌 어머님의 사랑을 잊으리.


어머니

뼈만 남은 얼굴에

두 눈만은 형형하여라.

자식들 잘 사는 꼴을 볼 때까지

눈을 감을 수 없다는 듯

정신  바짝 차리지만

기억은 사라지고

왜 이리 망상이 심한고.


똥 싼 속옷 부끄러워

장롱에  숨겨두고

밤마다 저승사자가

말을 걸어 한숨도 못자네.


내가 누구냐고

물어보면 큰아들 이름만

되내인다.

"태영이 아냐?"


곁에 있는 자식

알아보지도 못하고

말 나오는 대로

이름 대충 얼버무릴 때

주르륵 마음속에

흐르는 눈물.


술 마시고 장구 치던

남편 먼저 보내고

8남매가 처음부터 끝까지

속 안 썩인 놈이 없으니

팔자 참 기구하구나.


지지리도 고생하는

어매가 가여워

70살 남짓 하늘에서

기억 거두어 가니

어린아이가 되어버렸네.


큰 아들네 작은 아들네

넷째 아들네 돌아다니며

효도 받다 치매 심해져

요양원에, 병원에

병든 몸 의탁하던

모진 세월 속에

살아남은 그 질기디 질긴

생명줄이

오늘 놓여났네.

비로소


사랑하는 어머니

잘 가시오.

하늘나라는

근심걱정 없다하오.

한없는 사랑이 넘쳐 늘

평안하다 하더이다.


-넷째 아들 강태호 바침



어머님 장례를 치루고 추모관에 모시는 슬픔도 잠시 삼우제를 끝내자마자 정신 퍼뜩 차려 어머님 병원비 밀린 것 갚고, 조문 오신 분들께 감사의 글 전하고, 나포주민센터에 가서 사망신고를 했다. 아름다운가게에 가서 책 한권 고르고 나와 저녁 먹으러 가서 계산을 하려는데 아뿔싸 지갑이 통째로 없어져 버렸다. 이리저리 헤매다 결국 찾지 못하고, 다음날 주민등록용 증명사진 찍어 들고 주민센터에 다시 가서 신고하고 분실확인증을 받아 쥐었다. 2주 후에 찾으러 오란다. 그리고는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하루하루 일상을 보냈다. 하지만 기적은 지갑을 잃어버릴 때부터 잉태되었던 모양이다.


2020년 7월 18일 (토)

탁구동호회원들과 저녁밥을 먹고 나포집에 들어가려는 데, 대문에 우체국 방문기록카드가 붙어 있다. 읽어보니 군산경찰서에서 보냈다는 전갈이 있는지라 머리속으로 퍼뜩 스쳐지나 가는 것이 있다.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가?”보다는 “혹 잃어버린 지갑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며 잠에 들었다.


2020년 7월 19일 (일)

일요일 교회에서 예배만 드리고, 그 좋아하던 탁구도 치지 않고 쉬려는데 막내 여동생 시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전화가 왔다. 옷 챙겨 입고 빈소에 들어서보니 식탁 의자를 한쪽으로 배치해 놓았다. 시에서 코로나19 예방차원으로 조치했단다. 어기면 벌금이라. 내일 아침에 집배원한테 전화해야지 하며 눈을 감는다.


2020년 7월 20일 (월)

아침 일어나자마자 우체국 집배원에게 전화해서 방문시간이나 배달장소를 조정하려 했는데 깜빡하고 말았다. 군산시민연대 운영위 끝내고 저녁 대문 앞에 섰는데 또 우체국방문카드가 붙어있는지라 떼어내고 보니 법원에서 보냈다고 적혀 있다. 이것은 뭣이다냐. 내일은 꼭 집배원에게 전화해야지하며 잠이 들었다.


2020년 7월 21일(화) 오전

7시 40분 일어나자마자 출근 준비 마치고 부랴부랴 전화기를 들었다. 담당집배원과 통화하니, 직접 얼굴을 보고 줘야 한단다. 어쩔 수 없이 아쉬운 사람이 방문할 수밖에. 12시~13시 사이에 대야우체국에 방문하기로 약속한다.


2020년 7월 21일(화) 오후

25년 무사고 모범운전사 집사람의 도움을 받아  대야우체국으로 달려갔다. 두 개의 등기우편물을 받아들었다. 하나는 군산경찰서에서 나포면 관할 대야우체국으로 보낸 내가 분실한 지갑이 든 봉투(?), 다른 하나는 전주법원군산지원에서 보낸 서류(우리 단체 변경사항을 늦게 신고했다는 이유로 벌금형을 내리겠다는 통지서)다. 떨리는 마음으로 경찰서 봉투를 연다. 세상에! 내용물이 그대로 들어있다. 누군가 주워서 그대로 우체통에 넣었는가보다. 너무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에 경찰서 생활질서계에 전화를 걸었다. 고마운 사람의 연락처를 알려 달랬더니 웃으며 하는 말이 군산우체국에서 우체통으로 들어온 분실물을  경찰서로 보내온 것이라 누군지 모른단다. 천사의 이름은 몰라야 감동이 더 진한 법이지 그렇고말고.


 내가 왜 이렇게 긴박하게 장황하게 분실물 사건을 설명하는 것일까. 신뢰는 신뢰를 낳고, 기적은 기적을 낳는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지갑을 잃어버렸다. 위에서 얘기한 고마운 사람이 아니었다면, 지갑이 우체통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아니 들어갔다 해도 내용물 중 일부를 흘리고 넣었더라면. 우체국에서 분실물을 수거하는 분이 정리하는 중에 내용물의 일부가 빠졌더라면, 경찰서에서 분실물 접수하는 분이 분실물을 대충대충 다루며 툭툭 집어던졌다가 내용물의 일부가 빠진 상태로 대야우체국에 보냈더라면.


 내가 잃어버린 순간부터 한 순간이라도 "남의 것에 손 안대고 되돌려주기"라는 신뢰관계가 틀어지고, "모든 물건 소중하게 다루기"라는 정성 없이 부주의하게 분실물을 다루었더라면 나는 온전하게 지갑을 되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나의 일이 성사되기까지는 이렇게 신뢰라는 날줄과 정성이라는 씨줄이 촘촘히 엮여 있고 그 한결같은 과정이 기적을 낳은 것이다. 내가 세상에 지금 이렇게 있는 것도 바로 이 같은 과정을 통한 기적이라 말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은가? 진화론으로 말하면 인간으로 진화한 것이 기적이요, 창조론으로 말하면 인간으로 빚어진 것이 기적이 아니던가. 내가 우리 귀염둥이 신복희를 만난 것도 기적이요, 우리딸 강벼리가 우리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것도 기적이 아니던가. 군산시민연대에서 활동하며 여러 동지들을 만난 것도 부모님을 통해 몸을 부여받고, 험난한 길을 지나 살아남은 기적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내가 타인을 만나는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고, 기적과 같은 역사를 가진 이 세상에서 가장 독특하고 소중한 존재를 만나는 것이다. 어찌 소홀히 대하고 억압하고 차별하겠는가. 신뢰로 만나고, 지속적으로 신뢰를 쌓아가고, 정성으로 서로를 대하며 가꾸어가는 만남으로 이어질 때 천박하고 이기적인 세상에서 서로 배려하고 사랑하는 아름다운 세상으로 변하는, 그 곳에서 자유롭고 평화롭고 행복하게 누리는 기적을 맛볼 수 있지 않겠는가.


 사람을 찾습니다. 각박한 세상에서 기적을 일구어 낸 그 손끝을 만져보고 싶습니다. 불신과 냉대와 차별과 폭력으로 얼룩진 시대에 신뢰라는 희망의 불을 지펴 기적을 만들어 낸 그 따뜻한 사람의 향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위의 지갑을 주워 우체통에 넣은 천사님! 이 칼럼을 읽는다면 연락바랍니다. 밥 한 끼 같이 먹고 싶습니다. 강태호(010-6654-3774)